▶ 김진아 / 쿠알라룸푸르 Young & Rubicam
내 생의 시작이 나의 선택이 아니었듯, 내가 태어나서 맞이하는 세상도 나의 선택이 아니다. 운명처럼 주어진 것이다. 어린 시절 10여 년을 어디서 살았느냐가 개인의 정체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내가 원하지 않는 나라에 태어났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억울할 수 있다. 운 좋게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환경 좋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그것만으로도 인생은 축복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태어난 나라, 대한민국은 축복일수도 있고 불행일 수도 있는 나라다. 내가 태어날 즈음에는 전쟁도 없었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라서 큰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었으니 축복이기도 했지만, 반면에 무척 작은 땅 덩어리, 아시아 변방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세상의 중심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으니, 그것이 불행이라면 불행일 수도 있다. 불행까지는 아니어도, 다시 태어난다면,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한국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꽤 있지 않을까 싶다.
어찌되었든 한국에서 20여 년 살았고, 여러 나라에서 10여 년간 살았다. 이제 외국생활의 장단점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타향살이의 한계 또한 잘 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만 평생을 살기보다는 여러 나라에서 전혀 다른 문화와 환경 속에서 살아보는 것이 긴 인생을 좀 더 현명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가진 시각이 협소할 수 있음을 알아야, 다양한 시각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동남아에 큰 관심이 없던 내가 말레이시아에 살게 됨으로써 주변국까지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새로운 나라에 가서 살아보는 일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물론 쉽지는 않다. 한국에서 편하고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일들도, 타국에서, 타국의 언어로 처리한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 산다고 하면, 대부분 사서 고생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고생은 분명 큰 보상으로 돌아온다. 금전적인 보상처럼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 전체를 좀 더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자양분이 된다.
2주 후면 나는 중국 베이징에 가있을 것이다. 중국어 한마디 못하고, 중국은 가본 적도 없고, 중국에 대해서 개인적인 관심이 많았던 것도 아니다. 우연히 일할 기회가 생겼고, 거절할 수도 있었지만, 이런 기회 앞에서 내 대답은 항상 예스다.
미국만큼이나 중국은 세계 중심이 되어가고 있는 나라다. 최근 시진핑 주석의 강력한 국가 발전 계획을 보면 그 시기가 더 앞당겨질 것 같다. 큰 변화와 흐름이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 그 한가운데 서서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하는 것은 내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물론 베이징에 가면 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몸과 마음은 긴장된 상태로 한동안 지내야 할 것이고 생활을 위한 자잘한 일들까지 처리하느라 두세배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업무도 낯선 만큼 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은 돈을 주고도 살수 없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렇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도전하는 일은 언제나 가슴 뛰는 일이다. 20대 초반 처음 호주에서의 일년 간의 외국 생활, 20대 중반 미국으로의 유학 갈 때 느꼈던 걱정과 불안감은 많이 줄었다. 이제 어느 정도 외국생활에 대한 근력이 생긴 것 같다.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반가움이 더 커진 걸 보면 이제는 세계 어디를 가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10 수년 4-5개국에서의 생활 끝에 내가 얻은 것은 결국 바로 그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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