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식당 창가에 앉아
늦은 점심을 먹습니다
손대지 않은 광채가
남아 있습니다
꽃 속에 부리를 파묻고 있는 새처럼
눈을 감고 아직 이 세상에 오지 않은
말 속에 손을 집어넣어봅니다
사물은 어느새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어머니
반짝거리는 외투
나를 오래 감싸고 있는 애인
오래 신어 윤기 나는 신발
느지막이 혼자서 먹는 밥상이 됩니다
죽은 자와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와도 만나는 시간
이마에 언어의 꽃가루가 묻은 채
나무 꼭대기 저편으로 해가 지고 있습니다
-박형준 (1966- ) ‘소묘’ 전문
저녁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한 성실한 사람일 것이다. 해가 저무는 시간 혼자 밥을 먹는 화자는 언어의 행간에 피어나는 또 다른 언어들을 만난다. 아직 세상에 오지 않은 말, 언어 이전의 언어는 흐르는 사념이다. 견고한 이름을 얻지 못한 존재들의 부드러운 무의식이 다가와 화자를 감싸 안는다. 생과 사의 이런 저런 부대낌을 품어주는 하오의 한 때, 기우는 햇살 속으로 안식의 부리를 파묻는 평화로운 정경이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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