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 69돌 특별기획 시리즈 - 독립군 후손에게 듣는다
▶ <4>이명달 선생의 삼녀 이상옥 씨
이상옥(왼쪽)씨가 부친 이명달 선생이 국내항일 운동가로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9년 대한민국 정부부터 수상한 건국포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씨의 오른쪽은 남편 최희용씨와 이명달 선생의 막내사위 신유득씨.
흠치교에 가입 종교활동 위장, 자금모금 역할
일경이 사지 모두 태워 부친사진 없어 애통
“나라를 위해 그렇게 큰일을 했다는 사실도 모르고 가난을 물려준 아버지를 평생 미워하기만 했어요. 너무 후회가 됩니다…”
뉴욕한인경제인협회 여성회장을 맡은바 있는 이상옥(78)씨는 부친인 고 이명달 선생의 이야기를 전하며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냈다.
이명달 선생이 일제 치하 때 벌인 국내항일 독립운동을 인정받아 사망한 지 62년 만인 지난 2009년이 돼서야 한국 정부로부터 건국 포장을 추서 받았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이명달 선생의 독립운동 활약상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 지는 듯 했다. 이씨도 제2대 뉴욕평통 회장을 지낸 최희용씨와 1969년 미국에 이민 온 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급급했다.
그런 이씨가 부친이 항일운동가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미 황혼기에 접어든 70대 중반이 넘어서였다. 안동대학교와 광복회 영덕·영양·청송군 연합지회장인 임만진씨가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안동지역 독립운동가 자손을 찾는 일을 나서며 이명달 선생의 당시 독립운동 활동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
국가보훈처 등에 따르면 이명달 선생은 3.1만세운동 2년 뒤인 1920년 차경석이 교주로 있는 흠치교에 가입해 겉으로는 종교 활동을 표방하며 국권 회복운동을 전개했다.
흠치교는 당시 교주 차경석 밑에 60인의 고문을 두고 각 고문 밑에 6인조, 6인조 밑에 각 12인조, 12인조 밑에 각 8인조, 8인조 밑에 각 15인조 등을 두고 조직체계를 구성해 운영했는데, 이명달 선생은 이중 8인조에서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는 일을 맡아오다가 일경에 발각돼 체포, 징역 1년형의 옥고를 치렀다.
이씨에 따르면 이명달 선생은 숙박업을 하며 독립 자금을 모금했고, 당시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이씨가 운영하는 여관에 모여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한 사실이 적발되자 당시 일경이 저희 가족족보와 사진 등을 모두 태워버렸어요. 아버지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은 게 너무 가슴 아픕니다”
이명달 선생은 감옥에서 출소한 뒤에도 일경 1~2명의 감시를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이 선생은 일경의 눈을 피해 새벽마다 두부 장사를 하며 독립군의 자금을 조달하는 데 앞장섰다. 이 씨는 “젊은이들이 우리 역사를 잊지 않고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불행이 두 번 다시 발생해서는 안되기 때문이죠. 그것이 바로 아버지가 가장 원하는 것일 겁니다”라며 흐느꼈다.<조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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