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레이시아 출장이 계획되어 있었다. LA-말레이시아 직항 노선이 없어 홍콩이나 중국을 경유해야 한다고 해서 나는 별 생각없이 홍콩 경유를 선택했다. 출장가기 정확히 이틀 전 쿠알라룸푸르에서 출발한 말레이시아 항공 370편이 실종 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중국을 거쳐 가는 경로였으면 내가 충분히 탔을 수도 있었던 비행기였다.
4월 한국 출장 때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타이완 출장 한달 후에는 타이완 국내 항공편의 추락 소식을 들었다. 7월 중순, 우연히 또 한번 가게 된 말레이시아 출장 나흘 후 말레이시아 항공 17편이 추락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올해 연이어 터진 대형 사고들은 나의 출장 경로와 시간에 근접해서 일어났다.
신의 도움으로 운 좋게(?) 살아남아 편안한 휴가를 보낼 수 있는 것이 감사하면서도 만약 내가 저 비행기에 탔었더라면… 하는 생각에서는 전혀 자유롭지 못했다. 사실 가능성으로만 보자면 내가 사고 난 비행기에 타지 않은 확률은 탔을 확률보다 조금도 높지 않았다. 이쯤 되면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다녀올게”라며 귀가를 확신하는 인사를 하는 것도 모순처럼 느껴진다.
작년 말부터 나는 극심한 복통에 시달렸다. 별것 아닌 것으로 항생제를 복용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갑자기 위가 뒤틀리며 복부를 쥐어짜는 듯한 고통을 경험했다. 아이를 낳아 본 사람으로 감히 이야기하건데 출산의 고통에 절대 뒤지지 않는 통증이었다.
한번 그런 증상이 있더니 항생제를 끊었는데도 자주 아팠다. 의사가 내시경 검사으로는 큰 이상이 없어 보인다며 갸우뚱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위가 뒤틀리는 복통은 주기적으로 찾아왔고 담당 의사는 정밀 검사를 제안했다.
정밀 검사를 하고 결과를 통보 받는 날까지 나는 평상시와 똑같이 생활했다.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웃고 떠들었지만 그 와중에 불쑥불쑥 찾아드는 두려움이 있었다. ‘괜찮을 거야. 하고 많은 사람 중에 설마 내가… ‘ 하는 믿음과, 한편으로는 ‘나라고 위암 같은 큰 병에 걸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어쩌면 모든 것이 끝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었다.
검사 결과 담석으로 밝혀졌다. 의사는 증상이 없었다면 그냥 놔둬도 되지만 나 같은 경우는 통증이 자주 나타나고 있으니 빨리 제거 수술을 받는 게 좋겠다며, 가벼운 수술이고 흉터도 거의 안 남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친절히 덧붙였다. 아… 그렇게 나는 다시 내 삶을 되찾을 수 있었다.
오늘이라는 시간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갑자기 로토에 당첨되어 억만 장자가 될 수도 있고, 어떤 멋진 남자가 내게 한눈에 반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무심히 길을 걷다 떨어지는 벽돌에 맞을 수도 있고, 내가 탄 비행기가 갑자기 추락할 수도, 실종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잘난 척하며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암에 걸릴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좀 더 겸손해지고 조금 더 착해진 우리가 성공적으로 병이나 아픔을 이기고 일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고 장영희씨는 그녀의 에세이 ‘살아올 기적, 살아갈 기적’에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면 헛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늘 반반의 가능성으로 다가오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기억하자. 삶과 죽음은 늘 가까이 있음을… 그리고 최선을 다하자.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