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아 / 쿠알라룸푸르 Young & Rubicam
동안이 대세인 시대다. 젊어 보이고자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게으르거나 자신에 대한 열정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시대. 보톡스나 필러 같은 간단한 시술은 이제 연예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대처럼 입고 다니는 40-50대 남성들이 철없다 여겨지기보다는 센스 있고 젊은 감각을 지닌 사람으로 여겨진다. 무조건 젊어 보이는 것이 좋은 것일까?
얼마 전 업무 차 40대의 칠레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일과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대뜸 내 나이를 묻는다. 외국인이, 그것도 만난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대놓고 나이를 물어온 건 처음이었다.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이니, 그 또한 씩 웃으면서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일 때문에 한국 사람들을 몇 번 만나봤는데, 모두들 나이를 묻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왜 나이를 알아야 하는지, 업무 관계에서 왜 나이가 그토록 중요한지가 궁금해서 나에게 그렇게 장난치듯 물어본 것이었다.
뻔한 대답이긴 하지만, 언어적인 이유와 문화적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한국어에는 존댓말과 반말이 있어서 상대방의 나이를 알아야 언어를 가려서 쓸 수 있고, 또 다른 이유는 유교 문화에서 기인한, 윗사람을 존중하고 대접하는 문화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나 또한 아직까지도 나이가 왜 그토록 중요한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 중에 하나다. 나이 많은 사람이 나이 하나로 대접받고 싶고, 내 나이 아래면 대충 편하게 대해도 된다는 생각. 무척 권위주의적인 문화에서 기인한 잘못된 문화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서양과 동양 문화의 가장 큰 차이는 나이가 아닐까 싶다. 나이랑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는 문화와 그렇지 않은 문화. 개인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그 차이는 무척 크다. 나이가 많고, 직급이 높으면 나이가 어리고 직급이 낮은 사람들이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무조건 어려 보이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나도 한 때는 어려 보인다는 소리가 칭찬처럼 들렸지만, 지금은 그냥 내 나이로 보였으면 싶다. 어려보인 이유를 생각해보니 외모와 스타일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쇼핑을 가서 옷을 고를 때, 어떤 옷을 사야 할지 요즘 부쩍 고민이 된다. 나이에 맞춰 조금 진중한 스타일을 고르면 무척 낯설다. 좋아서 고르는 옷들은 내가 20대부터 즐겨 입던 스타일. 그러니 30대 후반인 내 나이보다는 어려 보이는 스타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광고회사에서는 워낙 옷을 편하게 입다보니 편한 스타일이 몸에 배어서인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썩 맘에 들지는 않지만 정장 재킷을 사보고, 별일 없어도 정장 스타일의 옷을 입어보곤 한다. 나이에 맞춰서 스타일도, 말투도 조금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다.
대부분 나이 먹는 것을 잊고 산다. 50대 여고 동창들이 모여 ‘어쩜 넌 그대로니…’라는 말을 주고받는 것처럼 우리는 주름진 얼굴을 보면서도 여전히 20대의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지도 모른다.
내용과 형식은 상호작용한다. 형식이 내용을 좌우하기도 하고, 내용이 형식을 규정짓기도 한다. 나이가 아닌, 내 외모와 스타일, 그리고 내 생각과 지식으로 사람들에게 내 나이에 맞는 인상을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외국인이든 한국 사람이든, 나에게 대뜸 나이를 묻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