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재료든 창조적이고 값지게 활용하여 마침내 예술로 완성시키는 것’을 뜻하는 브리콜라주(bricolage). 이 단어는 원시부족사회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프랑스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자신의 저서 <야생의 사고>에서 처음 사용했다.
간단히 ‘손재주’라고도 번역할 수 있는 이 단어의 범주는 나날이 확장되어, 최근에는 종종 ‘한정적 자원이나 이념에 대처하기 위해 필요한 현대인의 자질’관련 이론으로도 회자되곤 한다.
즉, 필요하고 원하는 모든 것이 제공되지 않는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고 인정하여, 그에 합당한 창의성을 발휘함으로 주어진 자원의 최대치를 이끌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무엇이든 손에 닿는 주위 물건을 이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통해, 익숙함에 대한 경계를 시작하게 하고, 그 경계를 통해 이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능력이나 자원에 대한 각성을 도모하게 한다는 것이 오늘날 이 단어에서 새롭게 발견해낸 가치이다.
브리콜라주의 핵심은 자원 자체보다 그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보고 해석하고 조합하는 사람의 능력에 있다. 그 능력에 따라 동시대의 누군가는 식상하다 제쳐놓았던 무언가에서 전혀 새로운 깨달음과 전환점을 마주할 수도 있는 일이다.
“누구나 그러하다”고 할 만한 것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듯하다. 세대를 거듭해 누구에게나 용납되고 받아질 것이라고 믿어왔던 많은 이론이나 사상, 법칙들이 무너지는 일들을 쉬이 목격하게 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온 선들이 어그러지고, ‘보편성’을 논하는 일이 어리석게 비춰지기도 한다. 이런 세태가 더욱 ‘브리콜라주’라는 개념의 확장을 도모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브리콜라주는 ‘정확한 설계도’가 망상이라고 말한다. 이유인즉, 언제고 주어진 자원이 한치의 오차나 부족함 없이 완벽히 갖춰진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결핍이나 오류는 언제나 존재해 왔으므로, 정확한 설계를 위한 준비나 기다림은 시간낭비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고로 그에 대처하는 바람직한 우리의 자세는 어떤 상황에서도 순간의 최선을 만들어내기 위한 ‘유연함’을 갖는 것뿐이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우리는 너무 잦게 변화를 경험하며 산다. 가벼운 변화는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그렇지 못하다. 준비했던 많은 것들이 무력해지는 순간, 그때마다 실망하고 주저앉았던 경험들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보편적 가치를 상실한 사회는 우리에게 임기응변이라는 처세술을 강요한다. 뭔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가정 자체가 주는 두려움과 피곤함 역시 늘 뒤따른다. 바로 이때 ‘브리콜라주’란 이 작은 단어는 우리에게 생각의 전환을 제안한다.
더 나아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불평이나, 이미 지닌 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보다는 당시에 가진 것을 가지고 모험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역설한다. 그 모험으로 이전에 없던 새로운 무엇과 닿아, 일상의 무료함을 날려버릴 순간을 꿈꾸게 한다.
그토록 갈망하는 변화나 발전의 자원이 이미 손안에 혹은 지척에 있다는 확신. 원시 부족인들로부터 유전된 이 단어를 이제 새로운 종류의 ‘희망’이라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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