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축구에는 지워버리고 싶은 흑역사가 있다. 1950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결승전에서 우루과이에 역전패 하며 우승컵을 내주었던 이른바 ‘마라카낭의 비극’이 그것이다. 자국의 우승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던 브라질 국민들은 충격과 비통에 빠졌다. 결승전을 보러 마라카낭 경기장에 모였던 20만 관중 가운데 여러 명이 그 자리에서 권총을 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10만명이 밤새도록 스탠드에 앉아 통곡하는 등 브라질 전국이 초상집이 됐다.
당시 브라질 대표선수들이 국민적 역적이 됐음은 물론이다. 이후 선수들은 대표팀에서 축출됐을 뿐 아니라 선수생활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 채 50년 가까이 은둔생활을 해야 했다. 선수 중에는 “브라질에서는 어떤 중범죄도 43년 이상은 선고받지 않는데…”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진 사람도 있었다. 이처럼 브라질 국민들에게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축구는 종교에 가깝다.
브라질 축구의 특징은 공격 지향적이라는 것이다. 수비 위주의 축구를 싫어한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우승하고도 페레이라 감독을 해고했다. 지나치게 수비축구를 한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브라질 축구는 경쾌하고 활달하다. ‘삼바 축구’라는 별명이 잘 어울린다.
그런데 이런 축구 스타일이 사단을 냈다. 8일 벌어진 독일과의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브라질이 1대7로 치욕적인 대패를 당한 것이다. 수비의 핵인 실바와 공격의 핵 네이마르가 출전하지 못했다지만 이런 변명을 대기에는 너무나도 일방적인 경기였다. 미네이랑 경기장에서 벌어진 준결승이 브라질 국민들에게는 ‘미네이랑의 비극’이 됐다.
브라질은 이번 대회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브라질 국민들 모두가 그렇게 믿었다. 선수단은 “우승하지 못한다면 실패”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예선이 시작된 이후 브라질이 보여준 경기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면서 우승이 힘든 것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 꿈은 준결승에서 멈춰 섰다.
브라질의 굴욕은 자신들의 축구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자만에 안주한 결과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나타난 특징은 강력한 수비에 이은 빠른 역습이다. 이것이 세계 축구의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았으며 브라질에 치욕을 안긴 독일 축구가 바로 이것을 상징한다. 브라질 축구는 이런 흐름에서 비껴나 있었다.
독일 선수들은 체력적으로 강인할 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뛰어나다. 게다가 멘탈도 바위 같다. 경기 내내 흔들림이 없다. 브라질 선수들에게는 이런 멘탈이 없었다. 첫 골을 먹자 우왕좌왕하며 연속 골을 허용했다.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조율하는 리더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알제리와의 전반전에서 한국팀이 보인 모습과 흡사했다.
굴욕적인 경기에 눈물을 흘리던 브라질 국민들의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 이들에게 축구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생각하면 이날의 고통은 쉬 치유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고통 없는 성장은 없는 법. 1950년 마라카낭 경기를 라디오로 들으며 눈물을 흘린 소년이 있었다. 이 소년은 “브라질을 최강 팀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소년의 이름은 펠레였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