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74일째, ‘잊지 말자’와 ‘이제는 정리하자’가 상충하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어차피 잊어져 갈 일이다. 죽은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바쁜 일상에 떠밀리는 동안 인간의 기억은 쇠퇴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어떻게 정리하느냐이다. 이와 같은 이견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이다.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 앞에는 세월호 참사 발생 나흘 뒤인 4월20일 한 한인의 자발적 실천으로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기원소가 설치되었다. 기원소가 설치된 이후 1만 여명의 한인들과 타인종 주민들이 총영사관 벽 기원소를 방문했다.
그들의 애도와 염원은 벽을 덮고도 모자라 그 위에 몇겹씩 붙은 추모 메모지, 꺼지지 않는 촛불, 시들 때면 언제든지 다시 꽂아졌던 꽃들 속에 고스란히 모아졌다.
하지만 하나의 목소리는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 기원소를 찾은 사람들은 기원소에 붙어 있는 메시지에 눈물을 같이 흘리기도 했지만, 어떤 이는 사람이 없는 틈을 타 기원소를 훼손하려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총영사관 벽 기원소는 뜯겨져 나간 메모지, 찢겨져 나간 포스터, 엑스표로 난도질당한 메시지 등으로 훼손당했다. 그래도 기원소는 그 모두를 기록이라도 하듯 다 끌어안고 있었다.
그런 광경을 보며 기원소 반대자들이 당당히 나서서 다른 의견을 내놓고 토론하기를 기다렸다. 그것이 의사소통의 기본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20일 총영사관 측은 이제는 정리할 때라며 강제로 기원소를 철거했다. 1시간 전에 전화로 통보를 했으니 일방적인 강제 철거가 아니라는 궁색한 변명을 했다.
아울러 때를 같이 한 한국 외교부 제1차관의 미국 방문과 그 다음날 총영사관에서 있을 6.25 관련 행사 때문에 기원소를 철거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의사소통이라는 과정을 완전히 생략한 결정이었다.
이 시점에 모든 것은 정치이다. 세월호 참사로 책임자를 처벌하자는 것도 정치적이고, 애도만 하지 왜 정부를 탓하며 정치적으로 이용하느냐 말하는 것도 정치적이다. 따라서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자”는 것은 애초부터 말이 되지 않는다.
총영사관은 기원소에 반대하는 의견도 들었어야 했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그 정치의 행태는 기원소에 와서 벽보를 뜯고 난도질을 하는 것과 똑같은 폭력과 고집의 정치이다.
총영사관은 한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견들을 묶어내고 조율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 한쪽의 입장에 서서 다른 한쪽을 패대기치는 결정을 내렸다. 기원소를 소중히 여기던 한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폭력이 따로 없다.
“이제 그 정도면 됐다”며 동포들의 염원이 담긴 기원소를 강제로 뜯어 내린 총영사관에 이렇게 요구한다. 의사소통의 기본부터 배워라. 잘 듣고 바르게 말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부터 배워라. 그리고 이 순간 모든 것이 정치임을 인정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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