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아 / 쿠알라룸푸르 Young & Rubicam
인생을 돌아보며 후회하지 않을 인생이 있을까. 매 순간의 선택과 결정에 모든 것이 옳았다고, 잘했다고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본다. 진정 후회하지 않느냐고.
15년 전, 나는 씨티은행 한국본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대출 심사부서에서 시작해 중간에 프라이빗 뱅커로 자리를 옮겨서 고객 투자상담을 했었다. 만 3년을 채우고 회사를 떠나 LA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프라이빗 뱅커 일은 성격에도 맞고 실적도 좋아서 동기들보다 대리승진도 일년 먼저 했다.
회사를 그만 둔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나 또한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을 가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는 첫째 십년 후의 내 모습이 될, 35세 이상 여성 상사들의 모습에서, 내가 갖고 싶은 목표가 보이지 않았다. 둘째, 회사는 언제든 다닐 수 있지만 유학은 그때가 아니면 가지 않거나 못할 거란 것을 알았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난 광고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당시 내가 내린 선택을 생각해 본다. 선택의 결과를 판단하는 건 그리 간단치 않다. 단순히 내가 일하는 업계만 바뀐 것이 아니고, 그로 인해 변화된 삶의 환경과 조건, 경제적 여건, 인간관계 등등까지도 다 고려해 본다면, 단순히 어떤 선택이 더 좋다 나쁘다 말할 수 없다.
일반적 기준에서 보면, 난 유학을 가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모아놓은 돈도 없고, 인간관계는 매우 협소해졌으며, 미국에서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을 안고 평생 살아가야 한다. 정서적으로 겪은 외로움, 미국인들과 일하면서 겪은 힘겨움까지 생각한다면, 정말 내가 옳은 선택을 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가족들도, 가서 고생만 했다며 안타까워한다.
나도 한때, 후회했던 적도 있다.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게 된 것 같아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그 과정들을 한발짝 떨어져 볼 수 있는 즈음에 이르니, 그 때의 내 선택이 옳았다고 믿는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더 많은 경험을 얻었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진 못했지만, 몇몇의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었고, 같은 자리에서 위로만 오르기를 바라기보다는, 다양한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배웠으며, 한국이라는 나라가 세상의 중심이 아닌, 그저 또 한 곳의 삶의 터전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고, 나와 다름을 ‘틀림’이 아닌, 그저 다를 뿐이라고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선택이 반대의 선택보다 절대적으로 옳은 선택은 없다. 따라서 선택 후의 시간을 내가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내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나 어설픈 자기 위로에서 내가 가고 있는 길을 좋게만 포장해서 바라보는 것과는 다르다. 어떤 선택은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을 수도 있고, 실수였을 수도 있다. 인간이 불완전한데 어떻게 완벽한 선택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아무리 잘못된 선택이라도, 그 결정으로 인해 원치 않은 결과와 맞닥뜨리게 되어도, 그 과정에서 깨닫는 무언가는 항상 있게 마련이다.
후회 없이 산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겠지만, 후회만 해서 더 좋아지는 인생도 없다. 더 나은 판단과 선택은, 내가 좀 더 현명해지고 성숙해져야만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선택의 결과에 집중하기보다,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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