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4월 14일 밤 11시 40분 빠른 속도로 뉴욕을 향해 가던 그때까지 최대 여객선 타이태닉은 북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했다. 그 후 불과 2시간 40분 후 타이태닉은 해저 3,800미터의 바다 속에 수장됐고 2,200명의 승객 중 1,500명이 동사했다.
당시로서는 최신 기술로 설계돼 ‘가라앉을 수 없는 배’라 불리던 타이태닉이 처녀항해에서 허무하게 침몰한데다 이 배에는 당시 미국과 영국의 내로라던 부자와 상류층이 가득 타고 있어 더 세계인들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가라앉을 리 없다는 이유로 정원의 1/3을 태울 수 있는 구명보트만 싣는 바람에 화를 키웠고 승무원들도 구조 훈련이 전혀 돼 있지 않아 구명보트에 사람을 더 태울 수 있는데도 가라앉을까 두려워 태우지 않았다. 구명보트 정원대로만 태웠어도 500명은 더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따지고 보면 타이태닉은 어지간히 재수가 없었다. 선장은 빨리 뉴욕에 도달할 욕심에 주위에 빙산이 많으니 조심하라는 주변 배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빨리 달렸다. 빙산이 배에 물이 흘러들지 못하도록 고안된 컴파트먼트 5개를 뚫었는데 4개만 뚫었어도 타이태닉은 가라앉지 않았을 것이다. 배를 가라앉히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컴파트먼트만 절묘하게 부순 것이다.
타이태닉은 사고가 나자마자 SOS를 치고 구조 신호 로켓을 쏘아 올렸지만 인근에 있던 배들은 로켓을 보고도 이것이 조난 구조 신호인지 알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이것이 구조 신호라는 국제 규정이 없었다. 또 바로 근처에 캘리포니아 호가 있었지만 하필 바로 그 때 무전사가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구조 요청 무선을 받지 못했다. 이런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국제 사회는 1914년 해양 안전에 관한 협약을 체결하고 24시간 무전사는 자리를 지키고 선상에서 로켓은 구조용으로만 발사하도록 했다.
신호를 받은 카르파티아 호가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이미 타이태닉이 가라앉은 지 2시간 후였다. 당시 바닷물 온도는 섭씨 영하 2도였는데 이 온도에서 인간은 쇼크로 15분내 사망한다. 카르파티아 호가 2시간만 일찍 왔더라면 많은 사람들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운명이라 하나 보다.
타이태닉이 가라앉은 지 꼭 102년이 되는 2014년 4월 15일(LA시간) 한국에서 462명을 태우고 인천에서 제주로 가던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조난당해 16일 현재 290명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고 당시 바닷물 온도는 섭씨 11도로 이 온도에서는 3시간이면 대부분의 인간은 사망한다. 좀 더 두고 봐야겠으나 대형 참사로 기록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사고 원인은 암초에 부딪힌 것으로 보이나 아직 확실치는 않다. 아무쪼록 한명이라도 더 많은 생존자가 나오기만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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