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3년부터 1856년까지 크림 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크리미아 전쟁은 최초의 현대전으로 불린다. 전략적 요충지인 이곳을 장악하려는 러시아와 이곳을 지키려는 오토만 터키와 영국, 프랑스 모두 철도를 이용해 대군을 동원했고 전보를 이용해 실시간 상황을 파악했다. 전장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영국 시민들도 전보를 통해 수 시간이면 전쟁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이 전쟁은 또 ‘백의의 천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신화를 낳았다. 당시 야전 병원의 상태는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총에 맞아 죽는 병사보다 병원에서 치료를 잘못 받거나 전염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10배는 많았다. 고통 받는 병사들의 소식을 전해들은 나이팅게일은 자원봉사자로 전선에 달려갔고 그녀를 돕기 위해 나이팅게일 펀드가 설립됐다. 이 펀드는 훗날 최초의 간호대인 나이팅게일 간호대 설립의 종자돈이 된다.
그러나 나이팅게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3년에 걸친 전쟁에서 연합군은 최대 37만, 러시아는 22만명이 사망했다. 지금은 거의 잊혀진 전쟁이지만 크림 반도를 차지하려는 러시아의 욕심 때문에 수십만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그 후 16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크림 반도에 전운이 일고 있다. 이번에도 역시 전략적 요충지인 크림 반도를 차지하려는 러시아의 욕심이 발단이다. 자유를 갈망하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민중 봉기로 부패한 친러 지도자인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쫓겨나자 러시아의 푸틴은 자국민 보호를 구실로 크림 반도를 접수하고 오히려 이곳 우크라이나 군에게 백기 투항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이런 푸틴의 도발을 서방이 묵인, 우크라이나가 굴복할 경우 푸틴은 주민들이 러시아 말을 쓰고 친 러시아 성향이 강한 동부 우크라이나마저 접수하러 나설 게 뻔하다. 광산과 곡창, 공장 시설이 몰려 있는 동부가 러시아 손에 넘어간다면 우크라이나는 반 토막이 난 채 국가의 기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푸틴은 오래 전부터 소련의 해체를 “20세기 최대 재난”이라 부르며 대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꿔 왔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에프는 1,200년 전 바이킹 족인 루스가 토착 슬라브 족을 정복하면서 세운 현 러시아의 모체다. 러시아라는 이름도 이 ‘루스’에서 나왔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키에프 접수를 고토 회복이라고 둘러댈 핑계가 있는 셈이다.
미국과 서방은 2008년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을 묵인함으로써 이번 푸틴의 크리미아 접수를 부추겼다. 거기다 오바마는 러시아의 후견국인 시리아 아사드의 화학 무기 사용을 “빨간 선”이라고 부른 후 실제로 사용하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나라가 미국을 우습게보도록 만들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지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은 제로고 유럽도 마찬가지다. 인구 4,600만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맞설만한 힘이 없다. 푸틴이 이처럼 안하무인으로 방자하게 나오는 것은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야금야금 먹는 것을 방치할 경우 푸틴은 발트 해 연안 3국부터 석유 부국 카스피 해 연안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등 구소련 영토 전역에 대한 야심을 드러낼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이 피를 흘려가며 야누코비치 독재 정권을 몰아낸 것은 호전적인 푸틴의 러시아 대신 자유 서방과 민주주의를 선택하기 위한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자유 민주주의가 확고히 자리 잡고 서방과의 교류로 경제도 부흥한다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영향력 상실은 물론 푸틴 독재까지 직접적인 위협을 받게 된다.
푸틴이 서방의 비난을 무릅쓰고 도발을 감행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과연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가 독재자 푸틴의 손에 떨어지는 것을 수수방관할 것인가. 향후 며칠간의 선택이 오랫동안 유럽과 러시아의 앞날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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