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대 의장 햄린 ‘은행 조율역’ 7대 에클스 취임 후 위상 격상
연준 100년 역사 동안 지금까지 의장을 지낸 사람은 모두 14명. 그들이 중요한 석상에 등장하면 온 세계 경제인들은 숨죽여 쳐다보고, 그들의 말 한 마디에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을 친다.
하지만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1913년 12월23일 ‘연방준비법’을 인준하면서 이듬해 출범할 당시만 해도 연준 의장의 권한은 크지 않았다. 초대 의장인 찰스 햄린(1914.8~16.8)은 미 재무부 차관 출신으로 미 정부와 연준에 속한 여러 연방은행을 조율하는 데 만족했다.
연준은 대공황 시기 매리너 에클스(1934.11~48.4)가 7번째 의장으로 취임하면서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갖추기 시작한다. 1935년 은행법이 만들어지면서 산하 연방은행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됐고, 재무부 영향에서 벗어나 통화정책을 독립적으로 집행할 수 있게 됐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만들어진 것도 이때다. 브레튼우즈 협정(1944년)으로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도 더 확고해졌다.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1951.4~70.1)는 19년 최장수 재임기록을 세우며 연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중앙은행의 임무가 파티분위기가 한창 뜨거울 때 그릇을 치우는 일”이라는 유명한 얘기는 그의 입에서 처음 나왔다.
폴 볼커(1979.8~87.8) 의장은 ‘인플레이션 파이터’라는 별명을 얻은 인물. 1ㆍ2차 오일쇼크로 물가가 급등하자 기준금리를 연 20%대까지 끌어올리는 초고금리 정책을 썼다. 그는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선을 위한 대선 캠프에서 ‘경제 과외교사’ 역할을 맡으며 다시 조명을 받았다.
앨런 그린스펀(1987.8~2006.1)은 역대 연준 의장 중 찬사도 비판도 가장 많이 받는다. ‘검은 월요일’(87년) ‘닷컴 버블붕괴’(2000년대 초반) 등 주식시장 폭락에 적극적으로 돈을 푸는 저금리 정책과 금융규제 완화로 맞섰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재임기간 그에 대한 평가는 매우 후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그에 대한 평가는 180도 달라졌다. 그가 금융규제를 너무 느슨하게 푼 것이 대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제 임기를 며칠 앞둔 벤 버냉키(2006.2~14.1) 의장. 금융위기 돌파를 위해 달러를 마구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라면 헬리콥터로 돈을 뿌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해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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