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L씨는 몇 년 전 생각지도 못한 ‘산타클로스’ 대접을 받았다. 이웃집 아이들이 그를 산타클로스라도 되는 듯 반기며 좋아하는 것이었다.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너무 고마워하네!” 싶었던 그가 연유를 알게 된 것은 며칠 지나서였다.
그해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이웃집에서 자그마한 선물을 보내왔다. 이웃끼리 그냥 지나치기 서운해서 보내는 연말인사라고 했다. 가격으로 치면 10달러 남짓. 물건보다는 마음이 고마운 선물이었다.
선물을 받은 L씨는 은근히 부담을 느끼던 중 마침 지인으로부터 초컬릿을 선물 받았다.‘지난 한해 도움을 주어서 고맙다’며 꽤 고급 초컬릿을 보내왔다. 초컬릿 상자를 보는 순간 L씨는 이웃집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초컬릿을 좋아할 테니 지난번 선물에 대한 보답으로 적당하다 싶었다.
그런데 그 후 아이들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 아파트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잔뜩 반색을 하며 좋아했다. ‘초컬릿 한 상자에 뭘 저렇게까지…’ 싶었던 의문은 며칠 후 이웃집 부인이 풀어주었다. “선물권까지 보내주시고 … 너무 고마워요. 그걸로 아이들 장남감도 사고 옷도 샀어요.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해요.” 지인이 보낸 초컬릿 상자 안에 200달러짜리 선물권이 들어있었던 것을 그는 몰랐던 것이었다. 받은 선물 다른 사람에게 다시 선물하는‘선물 재활용’이 빚어낸 에피소드이다. 이후 그는 무슨 선물을 받든 포장을 뜯고 내용물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크리스마스를 한주 앞두고 샤핑몰마다 북적북적하다. 선물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 주차장에서부터 ‘전쟁’이다. 주차장을 몇 바퀴씩 돌며 겨우 주차를 하고 선물할 숫자대로 물건 고르고 계산대 앞에서 마냥 줄 서서 기다리는 일들이 모두 대단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고된 노동이다. 이런 수고를 감수하며 우리가 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선물이란 무엇인가?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의 믿음을 빌리면 선물은 ‘끈’이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물이다. 마우리족은 선물 속에 영이 들어있다고 믿었다. 이 사람이 저 사람에게 선물을 보내면 선물 속에 담긴 영이 처음의 주인에게로 돌아가려는 속성이 있어 자연스럽게 두 사람 사이에 끈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사회적 유대관계가 형성된다는 말이다.
선물이 ‘관계의 끈’이라면 세상에 공짜 선물은 없다. 누군가에게서 선물을 받고 나면, 그래서 유대관계가 형성되면, 뭔가로 되갚아야 된다는 책무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주고받고 하면서 관계가 돈독해지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다. 때로 개인적 친분관계가 아니라 공적인 이해관계에서 이런 일이 생기다 보면 뇌물과 특혜 논란이 일곤 한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 친한 친구 사이에도 선물 책무감은 있다. 즐겁고 흐뭇한 일이기는 하지만 부담감이 없지 않다. 혹시라도 그냥 넘어갈 경우 상대방이 얼마나 섭섭해 할까 생각해보면 선물이 반드시 자발적이지만은 않다. 관계에 대한 예의이자 의무이다.
아직도 선물 샤핑을 끝내지 못했다면 서둘러야 하겠다. 선물 받고 좋아할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복잡한 샤핑몰 헤집고 다니는 것이 피곤한 일만은 아니다. 이 세상에서 맺은 인연들을 탄탄하게 유지하려면 때로 매개물이 필요하다. 선물이 그런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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