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박정희가 궁정 쿠데타로 유신 헌법을 통과시키고 긴급조치를 남발하며 종신 독재의 길을 달려가던 무렵 한국에 살아본 사람이라면 그 당시 상황에서 유신 반대와 민주 헌정 회복을 요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시위는 말할 것도 없고 이에 동조하는 언행이라도 하다 걸리면 모진 고문과 오랜 감옥 생활을 각오해야 했다.
이런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몇몇 천주교 신부들은 정의구현 사제단을 만들어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다. 천주교 원주 교구장이던 지학순 주교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자 이를 계기로 결성된 사제단은 유신 헌법 반대, 긴급 조치 무효화, 민주 헌정 회복 등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사살하기로 결심한 것도 이들을 비롯한 한국 민주화 운동 세력의 결의와 힘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들 사제단은 박정희 시절과 그 뒤를 이은 전두환 독재 기간 동안 숱한 고초를 겪었지만 결국 이들의 절규는 국민들을 감동시켰고 1987년 6월 항쟁을 거쳐 한국 민주주의가 뿌리 내리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민주화 된 후 이들의 행보는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이들은 민족 평화 통일 운동이란 이름으로 북한이 간절하게 희망하는 국가 보안법 폐지에 앞장서고 2002년 효순 미선 양이 미군 훈련 중 장갑차에 치어 죽자 미군 규탄과 주한 미군 지위에 관한 법 개정의 선봉에 섰으며 그 후에도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한미 자유무역 협정(FTA) 체결 반대 등 한국의 극좌 단체와 북한의 주장에 일관되게 동조해왔다.
그런 ‘정의’ 구현 사제단이 요즘 다시 뜨거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사제단 전주 교구 소속 박창신 신부가 지난 주 시국 미사에서 “북방한계선에서 한·미 군사훈련을 하면 북한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쏴야죠. 그게 연평도 포격”이라며 노골적으로 북한을 두둔한 것이다.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한 것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면 그 포탄에 맞아 죽은 한국 장병들은 뭐가 되는가. 마땅히 죽어야 할 존재라는 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장병 유가족들이 들고 일어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사제단에게 조금이라도 머리가 있다면 이런 말을 하고 싶더라도 참는 것이 옳은 길이다. 한국 장병의 목숨이 희생된 사안까지 북한 편을 들고 나선다면 이를 곱게 볼 국민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정의’ 구현 사제단은 지난 10여 년 동안 민주화 투쟁을 하며 쌓은 도덕적 자본을 다 까먹은 지 오래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들의 존재 목적이 더 이상 정의 구현이라고 믿지 않는다. 70~80년대의 영광을 되찾아보려고 발버둥 칠수록 더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더 이상 추한 꼴을 보이지 말고 제발 정신 좀 차리기 바란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 처음은 비극으로 다음번은 코미디로”라던 마르크스의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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