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지긋한 일본 남편들은 아내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황혼이혼’의 스트레스 때문이다. 일본에는‘나리타의 이별’이라는 말이 있다. 막내 결혼식을 치르고 공항에서 신혼여행을 떠나보낸 후 남남으로 헤어지거나 남편의 은퇴기념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갈라진다고 해 붙은‘황혼이혼’의 별명이다. 연금분할제도로 이혼한 아내가 남편 연금의 절반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급속히 확산된 사회풍조이다.
황혼이혼은 일본만의 얘기가 아니다. 최근 발표된 한국통계를 보니 지난해 이혼한 부부 중 결혼 20년이 넘은 부부가 26.4%를 차지했다. 그동안 가장 높았던 4년 이하 부부 이혼비율을 처음으로 넘어선 것이다. 이혼을 먼저 청구하는 것은 대개 아내들이다. 양성평등문화가 확산되고 이혼 소송에서 여성에 대한 경제적 배려가 커지면서 이혼을 결심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국도 다르지 않다. 1981년을 정점으로 미국사회의 이혼은 감소추세를 지속해 왔다. 하지만 단 하나 예외가 50세 이상 부부들의 이혼율이다. 지난 20년 간 50세 이상 부부들의 황혼이혼(gray divorce)은 두 배 이상 늘었으며 계속 증가 추세이다.
사회학자 수전 브라운 박사 조사에 따르면 1990년 전체 이혼 부부들 가운데 50세 이상 커플은 10쌍 당 1쌍이었으나 2009년 이 비율은 4쌍 당 1쌍으로 급증했다. 2009년 한해에만 60만쌍 이상이 황혼이혼을 했다. 브라운 박사는 이 같은 추세를‘황혼이혼 혁명’이라 지칭한다.
미국의 황혼이혼 역시 여성들이 주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은퇴자협회(AARP)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40세에서 69세 사이 부부의 이혼 가운데 여성이 청구한 케이스가 66%에 달한다. 이혼청구 3개 사유 중 하나로 배우자의 외도와 불륜을 꼽은 케이스는 의외로 27%에 불과했다. 다른 원인들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사회학자들은 베이비부머들의 의식을 첫 번째로 꼽는다. 이전 세대와 달리 베이비부머들은‘자아실현’을 아주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결혼의 의무 같은 전통적 가치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기준으로 인생항로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아이들 양육 의무를 다하고‘빈 둥지 증후군’이 찾아올 즈음 여생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혼을 결심하는 경우가 많다. 수명이 길어진 것도 황혼이혼 증가에 한 몫을 하고 있다.
황혼이혼 혁명은 사회적으로뿐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도 상당한 타당성이 있다. 일부 신경정신학자들은“황혼이혼은 폐경기 에스트로젠 수치가 낮아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호르몬이 줄어들면서 젊은 시절 견뎌냈던 남편의 고집을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인생의 가장 의미 있는 성공은 노년의 행복이다. 그럼에도 인생의 황혼기에 부부가 갈라선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불행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수없는 복선과 예고편이 있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모른 척 했던데 따른 결과일 뿐이다. 젊은 시절부터 미리미리 곪았던 상처가 터지기 전에 치유하려 노력하고 노년기에 감정을 공유하는 방법을 깨우치는 게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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