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끝나는 날 벌들은 클로버 위를 날고
어부는 낡은 그물을 수선한다.
즐거운 돌고래는 바다를 뛰어오르고
물받이 홈통에서 어린 참새들이 놀고,
뱀은 그 언제나처럼 금빛이다
세상이 끝나는 날 양산을 든 여인들이 들판을 걸어가고,
술 취한 자는 잔디밭 가에서 졸음에 겹고,
채소상인은 거리에서 소리하고,
노란 세일 보트는 섬으로 다가오고,
바이올린 소리는 별이 빛나는 밤까지 흐른다
천둥과 번개를 기다리던 이들은 실망한다.
징조와 대천사의 트럼펫을 기다리던 이들은 믿지 않는다
해와 달이 저 위에 있고 꿀벌이 장미꽃을 찾아들고
발그레한 아이가 태어나는 이상
아무 일도 없다고 믿는다.
다만 백발의 노인, 예언자일 수도 있겠지만
토마토밭을 가꾸느라 너무 바빠서
아직 예언자가 되지 않는; 그가 중얼댄다.
세상의 끝은 이렇게 오는 거야
세상의 끝은 이렇게 오는 거야
체슬라브 밀로즈 (1911-2004)
‘세상 끝나는 날에 바치는 시’ 전문(임혜신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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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은 어떤 것일까. 이 시인이 말해주는 종말은 정죄의 순간이 아니라 종말에의 두려움도 기다림도 사라진 평화로운 일상이다. 새들이 날고 벌과 꽃들이 피어나고 어부는 일을 하고 아가들이 태어나고 술주정뱅이는 술에 취해 풀밭에서 잠들고. 바르샤바 봉기라는 메모가 붙어있는 이 시는 2차 대전의 참상과는 다른 종말을 꿈꾸는 것 같다. 백발의 노동자, 그 이름 없는 예언자는 안다. 우리들의 마지막 날은 아주 평범한 하루하루, 결코 무서운 심판의 날이 아니란 것을.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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