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만 14살, 부모의 손을 잡고 이민 길에 오른 어린 이방인에게 미국생활은 어두운 장막 속의 삶이었다. 떠듬거리는 영어 장벽과 아시안 외모눈 또래들에게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다. 그는 “집에 올 때면 스트레스로 코피가 날 정도였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남의 나라에 와 새로운 인생을 개척한 이민자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눈물겨운 스토리다.
그를 일으켜 세운 건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한국인 특유의 강한 의지와 남다른 성실함이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며 학비를 벌었다. 학업을 마치고 아메리칸 드림은 그의 집 주차장에서 영글었다. 빌린 돈으로 직원 1명과 함께 초라하게 시작한 유리시스템즈는 몇 년 만에 신화를 낳았다. 그는 미국의 첨단 정보산업의 기수가 됐고 부호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도미 38년 만에 모국의 미래창조과학부 초대 장관에 발탁됐다.
메릴랜드에 사는 우리의 이웃, 김종훈 알카텔 루슨트 벨 연구소 사장(53)의 이야기다.
김 장관 내정자는 성공신화를 쓰는 동안 숱한 화제도 낳았다. 무명의 동양 젊은이가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을 삼고초려해 회사에 영입한 일이며 클린턴 대통령의 골프 회동 제의에 “시간이 없어 미안하다”며 거절한 일 등은 그의 집념과 일에 대한 열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바깥으로 눈을 돌리는 대신 그는 분초를 아껴 연구와 비즈니스에 모든 재능과 시간을 쏟았다.
하지만 김 내정자는 그를 낳은 조국, 대한민국에 관련된 일이라면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매주 토요일이면 그는 직접 차를 몰고 자녀들을 한글학교에 데리고 가 아이들이 한국인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가르쳤다. 한글학교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장학금으로 10만 달러를 내놓고 큰 행사가 있을 때면 몇 만 달러씩 쾌척했다. 그 자신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강연을 통해 모국의 젊은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애썼다.
그가 모국의 장관직에 내정되자 논란이 거세다. 미국 시민권자라는게 주된 이유다. 한국의 과학기술과 연구개발을 총괄하고 기술보안과 정보보호 업무를 담당하는 부처의 수장에 미국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은 곤란하다는 게 앞세운 명분이다.
물론 김 내정자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를 수락한 뒤 한국 국적회복 허가를 받았다. 또 미 시민권 포기 절차도 밟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도 일부 정치인과 여론의 거친 공세는 멈추지 않는다.
김 내정자의 국적 논란을 지켜보며 불쾌한 기분이 들지 않는 재외동포들은 없을 것이다. 외국 시민권자라 해서 공직에서 배척하는 건 아직 배타적인 타성을 버리지 못한 때문일까.
글로벌 시대에 국적은 어쪄면 종이조각에 불과하다. 하물며 그는 엄연한 ‘한국인’이었다. 그가 미 시민권을 취득한 것은 이민자로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가 장성해 모국에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도 한민족으로서 필연적인 것이다. 해외 인재들을 영입한다고 난리치다가 한편으로는 시민권자라 배척하는 이 아이러니를 어느 누가 수긍할 수 있을까.
김 내정자는 “만약 청문회를 통과해 장관직에 임명된다면 오로지 우리나라의 국익만을 위해 업무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가 다시 한국적을 되찾은 이상 어느 나라에 충성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접는 게 순리다. 국적보다 더 중요한 건 그가 그 직책에 적합한 인물인가를 따지는 게 우선순위일 것이다.
김 내정자가 모국행을 결심한 것은 명예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한국의 장관직 이상으로 명예를 얻었다. 그 이상의 가치 있는 사회적 역할을 해왔다. 젊어서부터 공공을 위한 봉사는 미국민의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아마 그도 감투욕 보다는 모국에서의 봉사하려는 마음이 앞섰을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얻은 성공과 안락한 삶을 뒤로 하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가 장관 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해 ‘그 나물에 그 밥’인 정부를 혁신하리라는 믿음은 버릴 수 없다. 그가 걸어온 길은 그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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