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불급설(駟不及舌) - 한번 입에서 나간 말은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로도 따라 잡을 수 없다고 했다. 2,500년 전 공자 시대에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의 속도감은 대단했을 것이다.
인터넷 시대인 요즘 한번 입에서 나간 말은 거의 빛의 속도이다. 입에서 나가는 순간 전 세계로 퍼진다.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말고 할 틈도 없어 관련자들은 종종 당황스런 상황에 빠진다. 요즘 이를 절감하고 있는 기관이 바로 스탠포드 대학의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안철수 전 후보와의 ‘관련성’ 때문이다.
한국 대선 투표날인 지난달 19일 안 전 후보는 아침 일찍 투표를 마치고 공항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샌프란시스코. 벤처의 요람인 실리콘 밸리와 인접한 스탠포드의 아태연구소가 행선지일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안 전 후보가 지난 2000년 벤처비즈니스 과정을 밟으면서 아태연구소 측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안다”는 한 측근의 말이 인용되었다. 그 순간 ‘안철수 스탠포드 행’은 기정사실화했고, 설사 사실이 아니라 해도 별 상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상관이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스탠포드 아태연구소 관계자들이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2000년부터 인연이 있었다니, 갑자기 가장 친한 친구사이가 되어 버렸다”며 연구소 관계자는 어이없어했다.
“처음에는 기자가 ‘소설’을 쓰나 했지요. 그쪽 캠프에서 언론 플레이를 좀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사실 아니다’라고 정색을 하고 해명하기도 그렇고 마침 방학이기도 해서 연구소 측은 가만있었다. 그런데 일이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안 전 후보의 인기가 대단했던 만큼 사방에서 문의와 청탁이 들어왔다.
안 전 후보에게 전해달라며 소포가 오지 않나, 한국에서 여행 온 한 고등학생은 그와의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부탁을 하지 않나, 모 대학 한인학생회는 그를 강사로 모시고 싶다며 계속 연락을 취해왔다. 그뿐이 아니다. 지인들의 새해인사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안철수’였다. “안철수 잘 있나?” “그 친구는 거기 왜 간 거냐?” 등.
결국 아태연구소 측은 지난 7일, 학교 개학에 맞춰 사실을 밝혔다. “안 전 후보는 여기 없다. 그가 아태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싶다는 요청을 한 적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개학하면 연구소가 바빠질 텐데 엉뚱한 전화, 이메일 처리하느라 시간을 빼앗길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스탠포드 아태연구소에는 그동안 한국의 굵직굵직한 인사들이 많이 거쳐 갔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 원세훈 국정원장,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등이 한국학 프로그램의 방문연구원으로 적을 두었었다.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사들이 연구 참여의향을 전해오면 연구소 측은 적극 수용해왔다. 안 전 후보는 그런 의향을 전해온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안철수 스탠포드 행’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현재 그의 딸이 스탠포드 대학원에 재학 중이고 부인 김미경 교수가 스탠포드에서 박사 후 과정을 이수한 적이 있어 스탠포드가 친숙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귀띔이다. 결국 누군가 추측으로 흘린 말이 빚어낸 해프닝이었다. 말이 빠른 세상일수록 더더욱 무거워져야 할 것은 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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