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중에 “혀가 아직도 있다”는 말이 있다. 오설상재(吾舌尙在)이다. B.C. 3세기 진나라의 재상이었던 장의의 일화에 나오는 말이다.
본래 위나라 태생인 장의는 변론술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방대한 독서량을 바탕으로 놀라운 언변을 펼치며 천하를 누비고 다녔다. 벼슬에 오르기 전까지 행색이 남루했던 그는 그렇게 다니던 중 초나라에서 도둑으로 몰렸다. 수백 대의 매를 맞고 만신창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의 핀잔이 쏟아졌다. 그때 장의가 한 말이 “내 혀가 아직 그대로 있다”는 말이었다. 혀만 있으면 얼마든지 뜻을 펼 수가 있다는 자신감이다.
소위 혀로 먹고 사는 직업들이 있는 데 그중 하나가 정치가이다. 정치는 ‘혀’ 즉 말재주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지만 ‘혀’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 정치이다. 정치인은 나라와 국민을 위한 소신과 비전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지지를 호소해야 하는 데 그 가장 일차적인 수단이 말이다. 말로써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때 정치가 가능해진다.
한국대선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연설’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제대로 된 연설 한번 들어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선동까지는 안가더라도 뭔가 청중을 열광시키고 들뜨게 만드는 힘이 있어야 하는 데 하나 같이 너무 차분하거나, 버벅 거리거나, 초등학교 교과서 읽는 것 같다는 평이다.
4일의 대선후보 TV 토론도 미진한 감이 있기는 마찬가지. 박근혜 후보에 대해서는 ‘동문서답’ ‘버벅 거린다’는 반응, 문재인 후보에 대해서는 “너무 조심스러워 존재감이 없다”는 반응이다.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후보가 박 후보에게 맹공을 퍼부으며 토론장 같은 분위기를 살렸지만 그는 또 그로 인해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공격을 위한 공격은 바른 토론의 자세가 아니라는 비판이다.
이래저래 뭔가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연설은 이번 한국대선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명연설을 하려면 먼저 내용 즉 생각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생각을 표현해내는 능력, 즉 언변이 있어야 하는데 후보에 따라 전자가 부족할 수도, 후자가 부족할 수도 있다.
연설의 기본은 소통이다. 지도자들이 연설을 하는 것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소통가’로 꼽히는 인물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경직되는 법 없이 편안한 어조로 대화하듯 하는 연설에 국민들은 그대로 빨려들곤 했다. 연설내용을 완전히 소화해서 자신의 말로 표현할 때 가능한 연설이다.
소통을 넘어 청중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연설로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꼽힌다. “우리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정의가 물같이, 옳음이 강같이 흘러내리기 전까지 우리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같이 가장 일상적인 단어들로 천둥 같은 울림을 만들어내는 그의 연설은 지금 들어도 감동적이다.
존 F. 케네디 역시 대표적인 명연설가이다.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 지 물으시오” 등 그의 연설은 표현방식 보다 우선 내용으로 기억에 남는다.
누가 당선되든 한국의 차기 대통령은 연설로 국민들을 사로잡지는 못할 것 같다. 말은 좀 어눌해도 행동으로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는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란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