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옆방의 아저씨, 실직했다고 며칠 전 아줌니랑 대판 쌈을 벌이더니, 아줌니는 보따리 싸들고 집을 나갔는데, 어디서 성능 좋은 녹음기 하나 장만해 와서는 아침부터 간드러진 유행가 가락이 번지더니. 글쎄, 그 아저씨와 나는 대낮에도 구들장을 등에 지고 번듯이 드러누워서, 내가 벽을 쿵쿵 두드리자 그 아저씨 한물간 목소리로 “총각 왜 시끄러워서 그랴” “아뉴 볼륨좀 높여 달라구유” 어쩌구 악을 쓰며 신이 났는데…… 그 가락에 맞춰 담뱃재를 털고, 엄니의 병환과 삭월세 걱정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라면상자에 슬그머니 손을 넣어보니 어헤라 열 개도 더 남았구나 신명이 나서 발장단도 쳐보고……
그런데, 차암내 그게 아니었던 모양여. 유행가를 따라 부르던 아저씨의 질펀한 노래가 코맹맹이 소리로 바뀌는가 싶더니 이내 뚝 그치고 말았거든? 뭔 일인가 기웃거려봤더니 글쎄, 녹음기 혼자 뽕자르작거리고 아저씬 눈이 벌개서 천장만 쳐다보고 있더라닝께. 그럼 녹음기 소리에 맞춰 ‘에헤라’ 어쩌구 하며 발장단이나 치고 앉았던, 나는, 이 푼수 같은 놈은 그럼 뭐하는 놈인겨. 갑자기 또 두 눈이 썸먹해지더라닝께.
윤중호(1956년 - 2004) ‘본동일기-다섯’ 전문.
----------------------------------------------
윤 시인이 48세의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뜨며 남긴 시에는 가난한 우리 이웃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아내가 도망 가버린 옆방 아저씨의 유행가 가락에 발장단을 맞춰줄 줄 알았던 위 시의 화자처럼 윤 시인도 인정이 많아 술과 사람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를 그리워하는 추억담과 추모시가 무성하다. 윤 시인이 시를 통해 발장단을 맞춰준 것은 잘난 사람들이 아니라 가난하고 서럽고 외로운 바로 우리들의 노래였기 때문일 것이다.
<김동찬 시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