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에 가면 서정주 기념관이 있다. 폐교 건물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이 기념관은 문학적으로 한국 현대시 분야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시인을 기념하는 곳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초라했다. 때마침 찾아간 때가 겨울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난방도 안 돼 영하에 가까운 온도 속에 두꺼운 털외투를 입은 안내원이 손을 녹여가며 덩그러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진열된 작품도 그의 문학 세계를 설명하려는 것인지 그의 친일 행적을 규탄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비판적인 것이 많았다. 이 정도로 기념관을 운영하려면 닫는 것이 차라리 나을 듯 했다. 아마 그가 이처럼 자기 고향에서 글자그대로 냉대를 받고 있는 것은 그의 전두환 지지 발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올 선거에서 안철수 사퇴를 능가할 충격적인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김지하의 박근혜 지지 발언이다. 김지하가 누구인가. 64년 한일회담을 반대하다 4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70년대 들어서는 시‘오적’으로 체포됐다 풀려나고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75년에는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나자마자 인혁당 사건으로 다시 잡혀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아마 박정희 정권 하에서 그만큼 고초를 당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타는 목마름으로’ 등 절절한 자유에 대한 갈망과 독재에 대한 저항 정신을 담은 시들을 써내 70년대 지식인의 표상이 된 인물이다.
그러나 운동권의 정신적 지주였던 그의 위치는 그가 91년 잇달아 발생한 학생들의 분신자살을 꾸짖는‘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2009년 노무현 자살을 놓고 ‘봉하 마을에서 악을 쓰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란 칼럼에서 노무현 추종자들의 자살 미화와 생명 존엄성 경시를 꾸짖으며 그와 좌파는 완전히 결별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박근혜 지지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지금이 남영동으로 끌고가 아무나 고문할 수 있는 시대도 아니고 그와는 문학적으로 비교가 안 되는 김한길도 한 문화부 장관 자리가 탐나서도 아닐 것이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반 박정희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질렀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굳이 설명을 한다면 두 가지다. 하나는 70이 넘은 김지하가 노망이 나 정신이 나간 짓을 한 것이고 아니면 더 이상 박정희를 물고 늘어져 나라를 둘로 갈라놓을 때는 지났다는 판단에서 일 것이다. 그는 앞으로 세상은 여성이 이끄는 시대가 될 것이며 박근혜가 그 한 상징이란 얘기를 한 적도 있다.
이번 발언으로 운동권은 물론이고 좌파가 장악하고 있는 문단에서 그는 서정주 이상의 대접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의 언행이 옳은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는 후세 사가들이 판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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