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제법 큰 홀이 손님으로 꽉 찼다. 먹고 마시며 이야기 하는 사람들. 그 사이사이로 웨이트리스들은 술병 나르기에 여념이 없다.
그 홀의 한쪽 구석에 액자가 걸려 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성경 욥기 8장7절의 말씀이다. 장사가 아주 잘되어 창대해지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성경 말씀을 걸어 놓은 것인가.
말이 남용되고 있다. 말의 오버도우스(over-dose)현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必死卽生, 必生卽死-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 것이요, 살기를 꾀하며 싸우면 죽을 것이다.” 명량 해전을 앞두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한 이 말도 그렇다.
불과 13척의 전함으로 3백 척이 넘는 적과 싸워야 한다. 이 전투에서 패할 경우 조선의 강토는 왜(倭)의 말발굽아래 완전히 초토화 된다. 그 말에는 때문에 일신의 생사 따위는 초월한 비장감이 서려 있다. 추상같은 군령 발동의 선언이 이 말이 전하는 메시지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 것이요, 살기를 꾀하며 싸우면 죽을 것이다.” 이 말은 그런데 요즘 너무 흔히 남용되고 있다. 가벼운 훈시에도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해도 캄캄하다. 천지간에 어찌 나 같은 일이 있으랴. 일찍 죽는 이만 같지 못하다….” 이 충무공의 정유년 4월 일기의 한 구절이다.
22년을 무관으로 보낸 그의 일생 중 가장 어려웠었던 시기가 바로 이 무렵이다. 왜의 침공으로부터 조선을 건졌다. 그 대가로 돌아 온 것은 그러나 투옥에, 삭탈관직이다.
겨우 목숨은 건진다. 그리고 뒤이어 떨어진 왕명은 도원수 권율의 장막에서 포의의 신분으로 종군하라는 것이다. 백의종군(白衣從軍)의 치욕을 당한 것이다.
그 왕명에 따라 남도로 내려가던 중 80대 노모의 부음에 접하게 된 것이다. 거기다가 그가 심혈을 기울여 키운 조선 수군은 칠천량 해전에서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했다. 그때의 심정을 이순신은 ‘하늘의 해도 캄캄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 백의종군의 기간은 그러나 찬란한 영광의 시기로 이어진다. 명량 해전에서 승리하고 조선수군을 재건한다. 그리고 쫓기는 왜군에 마지막 괴멸적인 타격을 안기고 이순신은 전사한다.
이 ‘백의종군’이란 말도 그렇다. 남용되어도 보통 남용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전혀 안중에도 없다. 그저 일신의 영달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런 정치인이 파워 싸움에서 궁지에 몰린다. 그러면 으레 하는 말이 백의종군을 하겠다는 것이다.
일종의 신성모독이랄까, 백의종군이란 말의 남용에서 느껴지는 심정이다.
안철수가 후보를 사퇴하면서 ‘백의종군’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백의종군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까.
억울하게 백의종군 처벌을 받고서도 오직 나라와 겨레를 생각하며 왜군을 물리치는 데 몰두한 충무공의 길을 따를까.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