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만에 휴식 -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연휴 즈음 우리는 주위 사람들에게서 관대함과 여유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가족이나 친지들을 만나기 위한 장거리 여행,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명절음식 등 또 다른 육체적 노동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은 일상사의 무게를 벗기는 쉼과 해방에 더 큰 무게를 둔다.
그뿐인가. 감사의 제스처도 늘어난다. 평소 잊고 살았던 사람들과 환경에 대한 새삼스런 고마움이 샘솟는 때도 바로 이때이다. 더불어 속상하고 억울한 일에 대한 감상을 반전시킬만한 의지를 새삼스레 발휘하게 되기도 한다.
인종과 문화가 달라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기대하게 되는 명절 때의 넉넉함은 우리의 마음을 늘 풍요롭게 한다. 무엇이 이러한 쉼을 주는 것일까.
E.M. 포스터의 소설 <하워즈 엔드>에는 “오직 연결하라(Only Connect)”라는 명구가 등장한다. 세속주의와 이상주의, 상치될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의 두 가치관을 두 집안의 대립으로 그려낸 이 소설에서 작가는 교차될 수 없는 개인적 신념이나 고집으로 인해 쉬이 갈라서고 마는 현대인들의 궁극적 연결에 대한 희망을 피력한다. 즉 “오직 연결하라”는 작가의 이런 간절한 바람을 담은 권고이자 주문인 셈이다.
이 소설은 현대인이 분리감을 겪고 있다고 전제한다. 서로에게 서로가 마땅히 필요함을 뜻하는 사회적 유기성을 애써 부인하고 있는 현대인들을 향해 그들 자신이 이미 세상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라고 촉구한다. 그러면서 나로부터 타인에게, 혹은 타인으로부터 나에게 유전되는 소중한 가치들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한다.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구나” 라는 확신,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참된 휴식을 주는 것은 아닐까. 평소 만나기 쉽지 않았던 ‘온전한 내 편’과 재회하는 기쁨, 이것이 바로 명절을 즈음해 우리에게 찾아오는 설렘과 여유의 실체일지 모른다. 실제 만남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해도, 자신과 연결된 누군가를 떠올리고 그리는 것만으로 큰 힘을 얻게 되는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은 하게 되지 않는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립과 자생이 힘든 세상에서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졌다는 단정은 언제나 이르며 또 옳지 못하다. 자각과 인지의 차이일 뿐, 우리는 누구 하나와도 연결되지 않은 채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다.
서로에게 무관하다는 듯 바쁘게 보낸 한 해를 돌아보게 되는 때이다. 연휴동안 지인들로부터 따뜻함과 고마움을 느꼈다면, 그것을 고스란히 유전해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를 건네받은 이가 또 다른 이에게 전달하게 되는 아름다운 선순환을 꿈꾸게 하는 가치 있는 시도이다.
혹 그와 같은 경험을 갖지 못했다고 해도 길게 아쉬워하지는 말자. E.M. 포스터가 표현한대로 관계에 관한한 우리는 마땅히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니 말이다. 그는 누군가에 의해 연결되기를 앉아서 기다리라고 말하지 않았다. 자신과 타인 사이의 이미 놓여있을 따뜻한 연결선에 대한 확신을 갖고 먼저 손을 내밀어 이미 존재하고 있던 연결됨을 확인하면 그뿐이다.
이 위대한 20세기 영국작가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고립감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해결책은 단순할지 모른다. 이 순간, 오직 연결하자.
<노유미 번역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