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물색에서 선물 고르기에 이르기까지 지극해 사적인 일을 대행해 주는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적절한 가격만 지불하면 거의 모든 종류의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다. 서비스의 영역이 급속히 확대되고 종목이 세분화되면서 극히 개인적인 일을 전문적으로 처리해 주는 용역업체들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전문 용역업체들이‘하청’을 받는‘사적인 일’은 배우자감 물색에서 자녀 양육, 노부모 간병, 식사준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결혼식과 생일파티 등을 기획해 주는 정도는 기본이고 의뢰인의 식성과 건강 등을 고려해 찬거리를 전문적으로 구입해 준다거나 매일 지정된 시간에 개를 끌고 산책을 대행해 주는 서비스도 있다. 불임부부를 위해 아기를 낳아주는 대리모도 따지고 보면 어엿한 전문 서비스업 종사자다.
개 산책·식사준비·생일파티 기획은 물론
연애코치 고용·배우자 물색도 남에게 맡겨
개인감정까지 상업화에 함몰 늘 경계해야
미국인에게는 생소하기만 했던 작명업도 수요가 늘어나는 업종에 속한다.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돈까지 주어가며 ‘내 아이’의 작명을 맡기는 것은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전문가의 힘을 빌려 부르기 좋고 듣기 좋으며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짓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서서히 수그러들고 있다.
배우자와 자녀에게 줄 맞춤한 생일선물이나 각종 기념일 선물을 대신 골라주고 심지어 본인이 정말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찾아주는 등의 극히 내면적 영역의 서비스는 한때 ‘가진 자’들만이 누리는 특권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전문 서비스 구매층의 범위가 슬금슬금 중산층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그러나 ‘청부된 자아: 시장시대의 개인생활‘이라는 책을 펴낸 UC버클리의 알리 러셀 호슈차일드 사회학 교수에 따르면 이들은 세심한 주의를 요구하는 복잡한 거래다.
책을 쓰기 위해 사적 영역의 서비스를 이용한 100여명의 남녀를 인터뷰한 호슈차일드 교수는 개인의 ‘정서적 핵심’에 손을 뻗치는 서비스와 이를 구매하는 사람들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으려 애쓴다.
그녀의 인터뷰에 응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단순하기 그지없었던 ‘마을 생활’이 얼마나 상업화했는지를 보여준다.
호슈차일드 교수는 “개인적 영역 안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서비스는 대체로 공동체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정부를 도외시하며 비영리기관들을 변방으로 밀어내려 드는 사회에서 급속히 번져나간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감정적 가치보다 구입 가능한 전문적 서비스의 우월성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상업화된 사회다.
시류를 거스르며 살아가는 것이 반드시 옳거나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상업화 시대의 함정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나름의 확실한 기준을 가져야 한다.
이에 대해 호슈차일드 교수는 “개인적으로 정말 귀중하게 생각하는 바를 추려내 ‘나 만의 것’으로 간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호슈차일드 교수와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타인에게 맡겨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한 확고한 기준을 갖고 있었다.
한 예로 전문직 종사자인 에이프릴은 자녀들에게 반드시 모유를 먹인다는 원칙을 정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서도 아침과 저녁에는 자신이 직접 젖을 먹였고 낮 시간대에는 보모에게 수유기에 넣어둔 모유를 주도록 지시했다.
그 이외의 자녀 양육은 외부 서비스를 최대한 이용했다. 보모는 물론 딸에게 적합한 서머 캠프를 찾기 위한 컨설턴트와 자전거 트레이너를 고용했으며 아이들을 위한 시간제 운전서비스도 유효적절하게 활용했다.
에이프릴은 전문 서비스 덕에 엄마가 해야 할 잡다한 일에서 벗어나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마이클은 딸의 생일파티만은 자신이 직접 챙긴다. 그가 사는 동네에서 자녀의 생일파티를 전문 용역사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직접 하는 아버지는 그가 유일하다.
마이클은 “내 아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생일파티를 맡긴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아무래도 전문가들이 준비하는 파티에 비해 결과가 엉성한 것은 사실이다.
‘이웃 아빠’들은 해마다 “쓸데없이 애쓰지 말고 외부 용역을 사용하라”고 권하지만 마이클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생일파티를 해준다는 것은 아버지로서의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기 때문에 외부 전문가에게 이를 맡기는 것은 마치 사랑 고백을 대신하게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믿기 때문이다.
완전한 익명을 요구한 20대 여성은 러브 코치를 고용했지만 매치닷컴(Match.com)을 통해 들어오는 잠재적 데이트 상대의 회신은 코치에게 보여주지 않고 혼자 읽는다. 그것이 그녀가 설정한 경계선이다.
시장의 힘이 남녀 관계의 영역에 좌판을 벌인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연애 지도교사’에 해당하는 한 ‘러브 코치’에 따르면 인터넷은 세계 최대의 ‘러브 몰’(love mall) 즉 ‘사랑 샤핑센터’이다. 2009년 한 해 동안 매치닷컴에 접수된 자기 소개 이메일만도 5,600만건에 달할 정도다.
코치라 불리는 특정 분야의 전문적 서비스 대행자의 수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비영리기관인 인터내셔널 코칭 페더레이션은 인생, 지도력, 기업에 관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코치의 수가 전국적으로 2만명을 헤아린다고 밝혔다. 물론 공식 인증을 받고 협회에 등록한 전문 인력이다.
하지만 코치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 개인적 서비스 전문 제공자들은 이보다 훨씬 많다.
심리치료사도 그 중 하나다. 심리치료사만큼 개인의 사적인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타인’도 드물다.
레이첼과 로저는 심리치료사와 반평생을 함께 했다. 레이첼은 심리치료사인 소피가 없었다면 로저와의 결혼생활은 일찌감치 끝장났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현재 미국인 부부 열 쌍 중 네 쌍은 이런저런 심리치료를 받는다.
레이첼과 로저가 심리치료를 받는 다른 부부들과 틀린 점은 결혼 후 장장 30여년에 걸쳐 소피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심리치료 서비스가 보편화되고 있다고는 해도 이런 케이스는 흔치 않다.
레이첼은 소피의 전문적 조언으로 결혼생활의 고비고비를 무사히 넘겼을 뿐 아니라 남편을 떠나 보낸 허전함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호슈차일드 교수는 “시장(market)은 타인과의 관계를 비개인화(de-personalization)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재개인화(re-personalization) 하기 위해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노력을 해야 한다”며 “시장이 우리의 사적 공간으로 점점 깊숙이 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시장이 시장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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