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12월 7일 일본은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했다. 그리고 석 달 뒤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 서해안 지대에 살고 있는 일본계 미국인 10만 명을 강제수용소에 가두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이들은 아무 죄도 없이 일본계라는 이유로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오지의 수용소에서 강제 노동을 해야 했다.
그런데 정작 일본군이 쳐들어왔고 일본과 제일 가까이에 있는 하와이에 사는 일본계 미국인들은 수용소에 끌려가지 않고 전쟁 중에도 평상시와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하와이 정치판을 일본계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898년 하와이가 미 합중국의 주로 편입됐을 때 주민들의 절대 다수는 일본계였다. 이들은 그 후 지금까지 하와이 정계를 주도하고 있다. 현재 2명의 연방 상원의원과 2명의 연방 하원의원이 모두 일본계다. 하원의원 중 한 명인 마지 히로노는 올 선거에서 연방 상원에 도전해 당선돼 내년부터는 첫 아시안 여성 상원의원으로 일하게 된다.
또 한 명의 하와이 출신 연방 상원의원인 대니엘 이노우에는 현재 88세로 50년째 상원의원 직을 맡고 있으며 상원의장 직무 대행으로 아시안 중 최고위직에 올라 있다. 현직으로는 최장기 상원 근무 기록을 갖고 있으며 뉴저지의 프랭크 로텐버그 의원과 함께 최고령 의원이기도 하다. 이처럼 하와이에서 정치적으로 막강한 일본계를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세력은 없다.
정치적으로 우리를 대변해 줄 사람이 없을 때 얼마나 당한다는 것을 한인들은 1992년 4.29 폭동을 통해 뼈저리게 경험했다. 그 결과 94년 김창준씨가 이민 1세로 첫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그 뒤를 이어 올해 강석희씨가 연방 하원에 도전했다 고배를 마시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올해는 아시안계에게 기념비적인 해가 될 것이다. 이처럼 많은 아시안계가 연방 의회에 진출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중의 한 명이 리버사이드에서 출마해 하원에 입성한 정원사의 손자 마크 타카노다. 하버드 출신으로 교사로 일하다 정계에 입문한 그는 첫 아시안 동성애자 의원이기도 하다. 하와이의 히로노 하원의원이 상원으로 가면서 빈자리는 첫 사모아 출신 툴시 개버드가 차지했다. 태미 덕워스와 그레이스 멩도 각각 일리노이와 뉴욕을 대표하는 아시안계 하원의원이 됐다. 역시 아시아계인 에이미 베라가 공화당 중진 댄 렁그렌을 꺾고 하원에 진출하면서 연방 의회에 나간 아시안계 수는 사상 최대인 12명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인구 비율로 보면 31석까지는 늘어나야 한다.
2010년부터 아시아계 이민자 수는 라틴계를 능가했다. 근면하고 성실하며 교육열이 높은 아시안들의 정계 진출이 늘어나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대세다. 미국 내 아시안계의 앞날은 밝다고 봐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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