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상무의원 7명‘제5세대’지도부 확정
시진핑을 선장으로 한 5세대 중국 지도부가 닻을 올렸다. 앞으로 10년 중국을 이끌어갈 지도부가 그 진용을 드러낸 것이다.
15일 열린 18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18기 1중 전회)에선 이미 국가주석과 총리로 확정된 시진핑과 리커창 이외에 장더장, 위정성, 류윈산, 장가오리, 왕치산을 차기 지도부로 확정했다. 지난 8월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시작된 5세대 지도부 인선작업이 3개월여 장정을 마쳤다.
중국에선 통상 덩샤오핑을 2세대 지도자로 부른다. 그리고 장쩌민과 후진타오가 각각 3, 4세대다. 이제 5세대인 시진핑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무엇보다 당 총서기와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를 함께 넘겨 당권ㆍ군권이 동시에 시진핑에게로 이양된 게 눈에 띈다.
이로써 내년 3월로 예정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국가주석 자리를 물려받게 되면 당ㆍ군ㆍ정 3대 권력을 가진 명실상부한 1인자 자리에 올라선다.
당의 지배가 이뤄지는 중국에서 실질적인 최고 권력은 당 총서기다. 그리고 ‘총구에서 권력이 나온다’고 믿는 중국에서 중앙군사위 주석 자리는 권력의 보증수표다.
따라서 두 권력을 한 손에 쥐게 된 시진핑 중심의 5세대 지도부는 이제 권력 인수작업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당권을 넘겼지만, 내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때까지 당ㆍ정 그리고 입법ㆍ사법부의 ‘보직’과 권한을 유지할 4세대 지도부는 이제 4개월간 5세대와 ‘동거’하면서 인계인수 작업을 벌인다.
9명 상무위원 체제에서 7명 체제로 바뀌었지만, 분야별로 신구 상무위원 간에 ‘업무 전수’가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두자릿수 GDP 성장률을 넘나들던 후진타오 집권시기와는 달리 세계 경제침체기를 맞아 7% 대의 중속 성장시대가 예상되고 빈부 및 지역 격차가 심화하는 등 안팎의 도전에 직면한 시진핑 호로선 마음이 편하지 않은 듯하다.
시진핑은 내외신 접견에서 “책임은 태산처럼 무겁고 갈 길은 멀다"고 현실 인식의 일단을 내비쳤다.
지한파 · 미국문학 전문가 · 기자출신 등 다양한 배경
■ 상무위원 7명 프로필
■시진핑
신중한 언행, 과묵한 성품이 돋보이는 대륙형 정치인으로 꼽힌다.
혁명원로 시중쉰의 막내로 태어나 남 부러울 것 없는 유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부친이 반 혁명분자로 몰리면서 14세의 나이에 하방해 산시성 옌안에서 8년간 지내며 농촌생할을 경험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 때문에 혁명원로의 후손들로 구성된 태자당의 핵심인물이면서도 서민적인 면모를 풍긴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자기관리에 철저해 처신문제로 구설에 휘말린 적이 없다. 그가 `큰형님’으로 삼는 쩡칭훙이 이끄는 태자당은 물론 상하이방, 군부 등에 광범위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으며 개혁파 인사들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수영 등 운동을 좋아하며 한국 축구에 대해서도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리커창(57) 총리
말 그대로 ‘모범생’ 스타일이다.
베이징대 학생회장 시절 “천리와 양심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고 실천해 왔다"고 밝힐 정도로 일찍이 삶의 철학을 정립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그를 원칙주의자로 부른다.
리커창은 안후이성 명문인 허페이 8중학교에서 공부했다. 졸업 후인 1974년 19세 나이로 당시 마오쩌둥의 “지식청년은 농촌으로 가 배우라"는 ‘상산하향’ 운동에 동참했다.
베이징 수도경제무역대 외국어과의 청훙(55) 교수가 부인이다. 청훙 교수는 미국 자연주의 문학 전문가로 통한다. 리커창의 가족과 친지는 대개 지방 공무원이지만 구설은 없다.
■장더장(66)
조선어(북한어)가 유창한 중국 내 대표적인 ‘북한통’이다.
옌볜 조선족자치주에 있는 옌볜대학에서 조선어를 전공한 뒤 평양의 김일성 종합대학 경제학과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장쩌민이 총서기 취임 이듬해인 1990년 첫 해외 여행지로 북한을 선택했고, 이 방북 일정을 수행한 것이 계기가 돼 장쩌민이 이끄는 상하이방의 ‘성골’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장쩌민의 각별한 관심 탓에 ‘장쩌민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장더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금도 장쩌민을 보필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열심인 것으로 알려졌다.
■위정성(67)
중국의 경제수도 상하이의 서기로 재직하다 최고 지도부에 입성한 위정성(67)은 태자당의 맏형이다. 저장성 출신으로 초대 톈진시장을 지낸 아버지 위치웨이와 베이징 부시장을 역임한 어머니 판진 사이에서 태어났다.
문화대혁명 당시 가까운 친척과 가족 9명이 사망했을 정도로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하지만 고위 관료 부모를 둔 덕에 장쩌민 전 주석이나 쩡칭홍 전 부주석과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
공산당 간부 자녀학교인 하얼빈군사공정학원 탄도미사일자동제어학과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30세인 1984년까지는 전선공장, 기계공업연구소 등에서 근무했다. 68세 ‘퇴출선’을 가까스로 벗어났다.
■류윈산(65)
신화통신 기자 출신으로 오랫동안 선전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산시성 신저우 출신으로 주로 네이멍구에서 초기 경력을 쌓았다. 1968년 네이멍구 지닝 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교사로 일하다 1975년부터 7년간 신화통신 네이멍구 지사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10여년간 중앙선전부 부부장을 지낸 그는 2002년 선전부장 자리에 오르면서 정치국에 입성했지만 혹독한 언론 통제와 인터넷 검열의 `주범’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대외적으로는 중국 관영 언론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면서 중국의 ‘소프트 파워’를 키우기 위해 애썼다는 평가도 나온다.
■왕치산(64) 부총리
금융통이자 위기사태를 도맡아 처리했던 ‘소방수’로 정평이 나있다.
야오이린 전 국무원 부총리의 사위여서 태자당으로 분류되지만 시진핑 국가부주석과 비슷하게 문화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농촌생활을 경험한 ‘고생을 아는 태자당’으로 불린다.
그는 사스를 성공적으로 퇴치함으로써 대행 신분으로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장’으로 꼽히기도 했다. 2004년 2월 정식 베이징 시장에 올라 차세대 지도자 자리를 굳혔다.
이번 18차 당대회에서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위원으로 뽑혀 시진핑 정권의 ‘군기 반장’인 기율검사위 서기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장가오리(66) 상무부총리
중국 정가에서 보기 드문 ‘자수성가형’ 인물로 꼽힌다. 중국 남부 푸젠성 진장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10세 때 아버지를 여읜 그는 샤먼대에서 계획통계를 전공한 뒤 광둥성의 마오밍석유공업공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특히 경제가 발달한 선전시, 산둥성, 톈진시 서기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경제관료로서의 이미지를 굳혀 왔다. 장가오리는 중국 권력의 3대 계파에 걸쳐 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장가오리는 일반적으로 상하이방의 태두인 장쩌민 전 주석계열로 분류되는데, 그를 중용한 인물은 장쩌민의 측근인 리창춘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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