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처럼 먹는 것에 목숨 건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한국에 가 TV를 틀어보면 아침부터 밤까지 먹는 것을 주제로 한 프로가 계속된다. 어디 가면 뭐가 특산이고, 어느 식당이 뭘 잘 하고, 요즘은 무슨 음식 축제 기간이고, 뭘 어떻게 요리하면 맛있고, 뭐에는 뭐가 들어 몸에 좋고 등등 먹는 얘기 빼면 별로 할 말이 없는 것 같다.
지난 번 광우병 파동 때 온 국민이 광화문으로 몰려 나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여중생들이“일찍 죽기 싫어요”라며 울부짖었던 것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무슨 음식에 유해물질이 들어있다는 기사가 한 줄만 나가면 그 업체는 폐업 위기에 몰린다.
얼마 전 한국 라면업계 랭킹 1위인 농심 너구리 라면에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검출됐다는 기사가 나왔다. 한 야당 의원이 국회 청문회에서 이런 사실을 알고도 어째서 판매 금지조치를 취하지 않았느냐고 식약청 관계자를 윽박질렀다. 이 관계자는 워낙 양이 적어 인체에 무해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으나 식약청은 하루 만에 원래 입장을 뒤엎고 회수 명령을 내렸다.
문제가 된 너구리 라면에서 검출된 벤조피렌은 4.7ppb (10억분의 1)로 극히 미량이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의 하나인 삼겹살 1인분에는 이보다 1만6,000배가 넘는 벤조피렌이 함유돼 있다. 배기 개스와 담배 연기가 섞여 있는 대기 중에는 100배, 팝콘이나 훈제 햄에는 이보다 1만배에서 10만배에 달하는 벤조피렌이 함유돼 있다.
발암 물질 검출 뉴스가 나온 후 판매를 금지한 대만과 중국은 회수해 검사한 결과 인체에 해를 줄 수준이 아니라는 이유로 판매를 다시 허용했다. 음식에 관해 가장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 식품 의약국(FDA)이 지정한 검사기관인 안레스코도 너구리 라면에 대해 벤조피렌 미검출 판정을 내렸다. 이곳은 5ppb 이하면 미검출 판정을 내린다.
물론 발암물질은 티끌의 반의 반쪽도 넣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1년 열두 달 매일 세끼씩 너구리만 먹어도 삼겹살 한 끼 분의 1/10도 안 되는 양이 들어 있는 것을 가지고 발암 물질이 들어간 식품이라고 부르는 것은 좀 지나친 감이 있다. 당사자가 농심 같은 대기업이었기에 망정이지 이름 없는 중소기업이었다면 아마 그 다음 날로 부도를 내고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
그토록 건강을 끔찍이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흡연율은 40%로 OECD 중 최고 수준이며 담배 값은 제일 싸다. 발암 성분이 극히 미량만 들어 있어도 흥분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발암 물질 덩어리나 다름없는 담배 판매를 그리 널리 허용하고 열심히 피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인들은 지금부터라도 음식과 건강에 관해 좀 균형감각을 갖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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