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트루질로(29)가 자신이 그린 자화상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는 아버지와 삼촌, 숙모와 동생으로부터 기증받은 신장으로 네 차례 이식수술을 받았다.
데이빗 트루질로 만큼 불운한 사람도 드물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그만큼 운이 좋기도 쉽지 않다. 올해 스물아홉 살인 그의 몸은 도무지 빤한 곳이 없다. 양 팔에는 수도꼭지를 연상시키는 션트가 달렸고 조직검사를 하느라 생긴 길고도 깊은 상처와 수술자국들이 거미줄처럼 몸통 전체에 퍼져 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의 위에도 여기저기 호스가 연결되어 있다. 여름에 웃통을 벗어 제치면 주변 사람들의 눈길이 우르르 달라붙는다. 그럴 때마다 그는“상어에게 물렸다”는 농담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눙치곤 한다.
생후 1개월만에“가망없다”의사 진단
네 살 때 아버지 콩팥 받고 생명 10년 연장
그 후 삼촌·숙모·동생 도움으로 지금까지…
한 때 탈선… 교회밴드 보고 참회, 여친도 생겨
데이빗의 몸이 만신창이가 된 것은 상어 탓이 아니라 신장이식 수술 때문이다. 지난 9월 그는 생애 통산 네 번째 신장이식 수술을 받았다.
‘장기공유 연합 네트웍’이라는 비영리단체에 따르면 1988년 이후 미국 전역에서 총 32만6,000건의 신장이식 수술이 이뤄졌지만 이 가운데 데이빗처럼 네 차례나 수술을 받은 심부전증 환자는 150명 정도에 불과하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채 콩팥을 기다리다 수술대 위에 누워보지도 못하고 숨져간 환자들도 부지기수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는 억세게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데이빗은 생후 1개월 만에 ‘신형성이상’ 진단을 받았다. 담당의사는 데이빗의 부모인 대니(54)와 마리아(52)에게 “도저히 가망이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통고했다. 데이빗의 콩팥이 너무 작아 제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그러나 “UCLA 소아 심부전과에서 유아들을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했으니 한 번 가보라”는 다른 의사의 귀띔이 그의 생명을 연장한 단초를 제공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데이빗의 요람 옆에는 병원 측으로부터 임대한 투석기가 한 대 설치됐다. 매일 밤 그는 투석기로 혈액을 걸러냈다.
혈액투석은 성인도 견뎌내기 힘들다. 네 번째 신장수술에 앞서 혈액 내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 한 번에 네 시간씩, 일주일에 세 차례 혈액투석을 받은 뒤 데이빗의 체중은 40파운드나 빠졌다.
걸음마를 시작한 이후 데이빗은 주사 맞기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병원으로 갈 때마다 차에 타지 않으려 발버둥치고 울부짖었다.
그렇게 울면서 데이빗은 “왜?”라는 질문을 반복했다. 마리아는 “울며불며 악을 쓰는 아이를 억지로 끌고 가면서 나도, 남편도 따라 울었다”고 회고했다.
데이비빗이 네 살이 되던 해 그의 입에서 대니와 마리아의 가슴을 쥐어뜯는 말이 튀어나왔다. 혈액투석을 받은 뒤 그는 가냘픈 목소리로 “죽고 싶다”고 했다. 가끔씩 그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대니의 가슴은 저려온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대니는 의사에게 “혈액투석 대신 아들을 살릴 수 있은 다른 방법을 찾아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담당의사는 신장이식 수술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했다.
환자의 나이가 네 살이면 이식수술이 가능하지만 문제는 콩팥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는 점이었다. 캘리포니아의 경우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뒤 최고 10년을 기다려야 한다. 더구나 데이빗의 혈액형은 O형이었다. O형은 같은 O형에게서만 신장을 받을 수 있다.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뜻이다.
다행히도 대니는 같은 혈액형을 지닌 아버지의 신장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콩팥’은 10년 만에 수명을 다했다. 그는 아들에게 남은 한 개의 신장마저 떼어주려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건 자살행위였다.
이런 상황에서 전화 기술자로 일하던 삼촌이 콩팥을 내주겠다고 나섰다.
당시 26세였던 삼촌 아트 트루질로는 이식 적합성 여부를 가리기 위해 혈액검사와 조직검사를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삼촌의 신장은 데이빗의 몸 안에서 8년간 버텨주었다.
2003년 데이빗이 또 다시 혈액투석기에 의존하게 되자 이번엔 숙모 요란다 트루질로가 “내 가슴이 시키는 일”이라며 콩팥 기증을 자청했다.
그녀의 멕시코 친척들은 “귀중한 장기를 그렇게 덜컥 내준다니 미쳤느냐”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요란다는 “중요한 건 맞지만 신장은 하나면 충분하다”고 응수했다.
네 번째 신장은 동생 더스틴(25)에게서 나왔다. 그동안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형에게 생명을 나누어줄 ‘기회’를 잡지 못했던 더스틴이 “누가 뭐래도 이번만은 양보할 수 없다”며 콩팥을 내놓았다. 그러나 세 차례의 수술을 거치면서 데이빗의 체내에 형성된 항체 탓에 더스틴의 신장은 이식에 부적합하다는 불일치 판정이 나왔다.
예상 못했던 벽에 부딪히자 더스틴은 UCLA의 장기교환 프로그램에 가입, 타인에게 자신의 콩팥을 기증하는 대신 다른 가입자로부터 데이빗에게 맞는 신장을 제공받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기어이 형의 목숨을 연장시켰다.
모터사이클 수리공인 더스틴은 “우리에겐 늘 가족이 최우선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생애의 절반 이상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데이빗은 가족의 희생과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는데 인색했다.
병 때문에 학업도, 직장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강퍅한 성격의 소유자로 변해 있었다.
언제 또 멈춰버릴지 모를 신장에 의존해 삶을 연장할 때마다 그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되어갔다. 몸의 일부를 서슴없이 떼어주는 가족들에게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는 자신의 옹색한 처지가 부담스러웠다.
병으로 인해 5피트4인치에서 성장이 멈춘 그는 위축된 마음을 펴보려고 마약에 손을 댔고, 친구들과 술독에 빠져 지냈다. 의사와의 약속을 밥 먹듯 펑크 낸 것은 물론이고 약도 제대로 복용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부모님의 교회에 들른 데이빗은 제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로 구성된 메틸밴드가 찬양공연을 펼치는 모습을 보게 됐다. 피어싱과 문신으로 얼룩진 외모는 눈꼴 사나왔지만 그들의 마음은 그가 그토록 원하던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 찬 듯 보였다.
그 순간 데이빗의 마음에 걸려 있던 빗장이 거짓말처럼 풀렸다.
자신이 고통 속에 혼자 버려진 것이 아니었다는 번갯불 같은 자각이 그를 사정없이 뒤흔들었다. 사실 마음의 문을 닫은 것은 그 자신이었다. 신장을 내어준 가족들은 일탈을 일삼는 그를 단 한 번도 비난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참을성 있게 데이빗이 문을 열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마리아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 가족들을 밀어낸데 대해 울면서 사과를 했다. 이제 과거의 삶과 작별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데이빗은 자신의 약속을 지켰다.
마음을 고쳐 잡고 생활태도를 고치자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복이 굴러들어 왔다. 그를 병원까지 데려다 주고, 시간에 맞춰 약을 먹으라고 잔소리를 하는 여자 친구가 생긴 것.
데이빗은 결혼을 해서 자신의 가족을 갖고 싶어 한다. 그게 그의 최대 소망이다. 그러면서도 결혼을 하게 되면 소중한 여자 친구 브리타니 비스(22)를 평생 간병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어 선뜻 마음을 털어놓지 못한다.
비스는 다르다. 가족과 친구에게 그녀는 거리낌 없이 말한다. “건강할 때나 아플 때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임대 받은 생명을 이어가는 데이빗은 분명 불운한 사람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그만큼 운이 좋기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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