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리비아 내전이 터지자 심리학자들은 다투어 무아마르 카다피의 캐릭터 프로파일을 쏟아냈다. 카다피는 조지 워싱턴대의 제롤드 포스트 박사의 예측대로 망명이나 항복 대신 죽음으로 끝난 결사항전을 택했다.
전쟁에서 상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승패를 결정짓는 핵심 요건이이다. 병서에서도“나를 알고 상대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적수, 혹은 맞수에 대한 파악은 비단 전쟁뿐 아니라 성공과 실패가 교차하는 광범위한‘승부의 세계’에 두루 적용된다. 선거판에서 나선 정치인에서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은 외교관이나 기업인에 이르기까지 상대방에 대한 파악의 정도가 최종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국가 차원에서도 정보는‘힘’이다. 이 때문에 정보기관들은 적성국은 물론 우방국 지도자들과 유력 인사들에 대한 캐릭터 프로필(character profile) 작성에 공을 들인다.
미국은 CIA 중심 적성국·우방 지도자·유력인사 탐구
연설·저술 같은 공적 정보 통해 성격·심리상태 분석
김정일·카다피서 차베스·아흐마다네자드 등 주 대상
미국 이스라엘·이집트 평화협정 중재 성공에 일조
미국의 경우 이 작업은 주로 중앙정보국(CIA)과 펜타곤(국방부)이 담당한다.
CIA와 펜타곤의 애널리스트들이 핵 개발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서방 측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운 마흐무드 아흐마다네자드 이란 대통령, 남미 좌파세력의 선봉장으로 지난 10월 7일 대선에서 4선에 성공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등 이른바 ‘관심인물’의 신상털기와 성격분석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 지도자,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도 살아 있을 당시 CIA ‘인물 탐구’의 주된 표적이었다.
CIA 내 행동분석 전담부서 창설자인 조지 워싱턴대학 정치심리학 프로그램 디렉터 제롤드 포스트 박사는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은 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위험한 지도자들의 정치적 프로필을 작성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보당국이 캐릭터 프로필을 작성한 기록상의 첫 번째 인물은 아돌프 히틀러였다. CIA의 전신인 전략사무국(OSS: Office of Strategic Services)
은 1940년대 초 하버드대학 성격분석 전문가인 헨리 A. 머레이에게 히틀러의 성격과 심리상태를 파헤쳐 달라고 의뢰했다.
OSS의 요청을 받아들인 머레이는 정신분석 기법을 환자의 개인사와 결합하는 임상사례 연구 방식을 동원해 히틀러를 “극도로 자기비하적이고 동성애 공황을 보이며 오이디프스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인물”로 평가했다.
CIA를 비롯한 정보당국은 그들이 작성한 인물분석 자료철을 공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사용하는 캐릭터 프로파일 작성법은 거의 대부분 민간 학자들에 의해 개발됐기 때문에 일반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캐릭터 프로파일링을 담당하는 심리학자들은 주로 특정 지도자에 대한 공적 정보, 즉 연설, 저술, 전기적 사실(biographical facts), 관측 가능한 행동 등에 의지해 그의 성격과 심리상태를 분석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작품’은 객관적인 ‘과학’이라기보다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예술’에 가깝다. 때문에 상대와 상당한 거리를 둔 ‘원거리 프로파일링(at-a-distance profiling)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특정인을 평가한 캐릭터 프로필을 사용할 때 그 잠재적 가치와 함께 한계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 심리학자 필립 테트록 박사는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는 데 있어 전문 프로파일러가 눈을 가린 침팬지보다 나은 것이 사실이지만 둘 사이의 차이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 크지가 않다”고 말했다.
테트록 박사는 “정확한 프로필 작성을 가능케 하는 마법의 소스는 없다”며 “부정확한 캐릭터 프로필이 나오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워낙 급하게 작성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정보당국의 레이더 망에 잡히지 않은 채 별 일 없이 지내다 느닷없이 ‘관심 인물’로 급부상한 지도자의 캐릭터 프로필은 시간상의 제약으로 급조될 가능성이 높다.
애널리스트들은 아직도 임상적 사례연구(clinical case study) 접근법을 사용해 캐릭터 프로필을 작성하지만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에 바탕을 둔 추측과 개인적 의견보다 코흘리개 시절까지 훑어 내려가며 확보한 대상자의 전기적 사실에 훨씬 많은 비중을 둔다. 지난 수년간 전문가들은 ‘관심 인물’에 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분류한 ‘케이스 히스토리’에 ‘내용 분석’ 기술을 접목시켜 정확성을 높이는 방법을 터득했다. 내용분석이란 상대의 말이나 글에서 자주 나타나는 패턴을 찾아내 심리를 꿰는 방법이다.
시라크제 대학 연구원인 마가렛 허만이 개발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은 해당 지도자의 인터뷰, 연설 등을 검색해 1인칭 인칭대명사처럼 특정 범주에 속한 단어들이 등장하는 빈도를 파악한 후 이를 ‘지도력 자질(leadership traits)’에 연계시켜 특성을 캐낸다.
미시rks대 심리학 교수인 데이qlt G. 윈터도 지도자의 말과 글의 내용을 분석해 권력욕, 성취감, 제휴의지 등을 판단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싹 쓸어버리겠어’라는 발언에서는 권력 지향성을, ‘저녁 식사후 모두가 함께 둘러앉아 웃고 떠들었다’는 말에서는 제휴 지향성을 읽어낸다. 특정 단어의 사용빈도를 기준으로 권력 지향성이 높고 제휴 의지가 낮게 나온 지도자는 공격적 성향의 인물로 간주된다.
지난해 2월 리비아 내전이 터지자 심리학자들은 다투어 무아마르 카다피의 캐릭터 프로파일을 쏟아냈다. 서방 측의 지원을 등에 업은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가 싸움의 주도권을 쥐기 시작하면서 카다피가 어떤 식으로 마무리 대응을 할 것인지가 세계의 관심사로 떠올랐고, 그의 성격과 심리상태 및 행동양식이 막판 시나리오의 결정적 구성요소로 자리를 잡았다.
CIA나 국방부 정보부서 전문 요원들의 평가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 없지만 조지 워싱턴대의 제롤드 포스트 박사는 외교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 ‘포린 팔러시’에 기고한 글에서 “카다피는 평소에는 이성적이나 심리적 압박에 처하게 되면 망상적 사고를 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현재 그는 리비아 지도자가 된 이후 가장 심한 스 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포스트 박사는 이어 “카다피는 스스로를 완전한 국외자이자 불가능한 승산에 도전하는 아랍의 전사라 믿고 있으며 불길 속으로 사라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숨이 붙어 있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는 예측이다.
고향인 시르테에서 항전하던 카다피는 시민군의 공격을 피해 친위대 병사들과 함께 차량을 타고 달아나는 과정에서 발각돼 사살됐다. 그의 ‘최후’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설이 나돌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국외망명을 택하지 않고 포스트 박사의 예측대로 숨이 붙어 있을 때까지 저항했다는 점이다. 이런 종류의 지도자 성격분석은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평화협상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당시 캠프 데이비드로 메나햄 베긴 이스라엘 총리와 안와르 엘-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을 불러들인 지미 카터 대통령은 협상을 중재하기 전 CIA가 제공한 두 사람의 캐릭터 프로필을 꼼꼼하게 검토했다.
CIA 브리프는 사다트가 스스로를 “통 큰 전략가”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가 원하는 전체적인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설득하면 전술적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브리프는 또 그가 자기 확신이 강해 종종 보좌관들의 반대의견을 물리치고 과감한 제안을 내놓는다고 덧붙였다.
‘사다트 요리법’을 숙지한 카터는 이를 십분 활용,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역사적 평화협정 합의를 도출하며 단임으로 끝난 임기 중 유일한 장외 홈런을 날렸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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