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15일은 인천상륙작전의 날, 9월28일은 수도탈환의 날, 또 10월 초하루는 국군의 날, 그리고 10월15일은 평양입성의 날이다. 이토록 9월과 10월은 지난날 국가의 위기를 맞아 전사한 호국영령을 경배하고 생존한 참전용사들을 위로하는 날로 기억이 새롭다.
인생의 겨울을 예고라도 하듯 가을 빗발이 거세지고 빗물이 방울져 몸부림치듯 땅위에 뒹굴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피어오르는 향불은 불어오는 바람결에 너울너울 춤을 추며 떠도는 넋을 달래고 있을 무렵,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 한구석에서는 한 무리의 노병들이 삼삼오오 둘러 앉아 향불을 지피며 묵상에 잠겨 있었다.
한 때 생사를 함께 한 노병들이 어느 비오는 날 옛 전우의 무덤을 찾아 나선 모습이다. 62년 전 청년시절 당시를 회고하며 노병들의 기억 속에서 쏟아지는 전투무용담은 바로 엊그제 본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고 강렬하게 떠오르는데 그 참전용사는 현재 노령으로 생존자 17만명이 매월, 아니 매일 기하급수적으로 삶의 수명을 다해 사라져 가고 있다는 통계다.
돌이켜 보면 1950년 6월25일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는 북한 김일성에 의해 피를 토하는 아픔이 시작됐다. 동족상잔의 전투현장에서 적과 맞서 혈전을 거듭하면서 충성스런 장병들은 값진 희생으로 조국의 제단위에 꽃다운 젊음을 바쳐야 했다.
당시 초급지휘관인 소대장과 중대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에서 급조 양성한 신임소위들의 활약과 작전활동은 전사에도 남아 있다. 임관과 동시에 곧바로 현지 실병 지휘에 임해 도처에서 육탄전과 육박전등 혈전의 사투를 계속하며 지휘 공백을 메워 일선부대의 전투 질서유지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1953년 7월27일 휴전 직전까지 단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해 유리한 작전지역으로 이끌기 위해 ‘피의 능선’ ‘저격 능선’ ‘백마고지’ ‘철의 삼각지’ ‘수도고지’ ‘금화지구 전투’ 등 수많은 격전지에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생사의 갈림길에 치열한 공방전을 치른 얘기다.
풍전등화와 같이 무너져가는 국가위기를 맞아 고귀한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켜낸 그날의 영웅들의 공을 드러내려는 아니다. 겨우 참전수당으로 ‘월 12만원’을 국가는 보훈의 값으로 큰 생색을 내고 있어도 80대 노병은 그저 감사할 뿐 말이 없다. 아직도 유해마저 흔적마저 찾지 못하는 실종자와 북한에 억류된 아군 포로에 대해선 그렇게 위정자가 떠들던 ‘햇볕’도 소용없이 지나갔다.
종북 민주투사보다 못한 복지혜택이 참전노병들에게 보훈이란 이름으로 전
해지고 있다. 평균연령 82세의 노병들은 지난 62년의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다. 어떤 전사자 비문을 보니 ‘임은 나라의 부름을 입어 젊은 피로 쏟다가/적의 침략을 부셔 이 땅에 충의를 새기니/오늘은 겨레의 번영 내일은 조국의 통일을 보리라’는 내용의 헌시가 적혀있다.
그 어떤 정책도 국가안보에 우선할 수 없다. 즉 어떤 가치도 국민의 생존에 우선할 수 없다는 말이다. 튼튼한 국방을 유지해 국민의 생존을 지켜나가는 길은 결코 전쟁을 잊지 않는 것이다. 지난해 북한의 두 번에 걸친 군사도발 이후 우리 젊은이들의 국가안보에 대한 인식이 점차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 국민이 이룩한 경제적 풍요와 평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지난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의 값진 희생의 결과로 이 사실은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되며 망각할 수도 없는 역사적 교훈이다. 이게 보수골통의 푸념일까?
적을 쫓아 조국의 산야를 누비던 젊음은 가버리고 어느새 80대의 노령으로 변한 역전의 용사는 이제 눈에 이슬이 맺히고 손에 든 지팡이가 무겁기만 하다.
<이재학 6.25참전유공자회 부회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