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트맨 시리즈 3부작의 최종편 개봉 첫날 부지런히 극장을 찾아 영화를 관람했다. 이후 며칠간 여러 차례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해피엔딩이야?”
영화는 해피하게 끝을 맺는다. 파멸 직전의 고담시를 성공적으로 구해낸 주인공은 몸 건강히 이전보다 더 밝은 일상을 시작한다.
이 말을 하면서 문득 “영화의 해피엔딩은 무의미하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기 때문”이라던 이창동 감독의 말이 생각났다.
영화는 보통 짧게는 1시간, 길게는 3시간 안에 대부분 끝이 난다. 그 시간 동안 어떤 이야기가 시작되고 절정을 거쳐 결말을 맺는다. 그 결말은 영화를 마감하는 순간의 결말이 될 때가 많다. 아니, 모든 영화의 경우가 그렇다.
어느 영화평론가는 “모든 이야기의 결말은 총체적으로 죽음을 은유한다. 고로 과도한 ‘속편 영화’의 등장은 결국 상실이나 죽음을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집단 무의식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렇지 않아도 고단한 삶을 사는 현대인들 가운데 좋아하는 영화 속 주인공의 죽음까지 목격하고 싶은 이가 어디 있을까. 영화는 인간사회를 표상한다. 때문에 그 안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해도 놀라울 것은 없다. 더욱이 주인공이 현재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서 절망하여 쓰러져 있다면, 그 상황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이 보고 싶어지는 건 당연하다. 게다가 그의 성공이 지속적이고 반복적이라면? 이런 이유만으로도 속편 영화는 지지받아 마땅하다.
속편 영화란 ‘007 시리즈’처럼 한 편으로 끝나지 않고 몇 회이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영화를 말한다. 과거에는 한 편으로 완성할 수 없는 풍부한 이야기를 가진 작품들을 주로 시리즈물로 제작했다면, 요즘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이라는 철저한 경제효용의 원칙에 따라 일단 시장성이 입증된 작품들을 의도적이고 반복적으로 우려먹는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상당수의 시리즈물들이 단순히 ‘거대 제작사 및 배급사의 막강한 자금력’의 수혜물일까? 그 이면엔 쉽게 해피엔딩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점점 더 각박해지기만 하는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살아가려고 애쓰는 현대인의 복잡다단한 심리가 깔려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더운 여름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덥다는 말이 절로 터져 나온다. 마냥 끝도 없이 더울 것 같아도, 전 주보다 조금 일찍 지는 해를 보면 ‘곧 가을이 오겠구나’ 하는 희망을 갖게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은 특유의 ‘자연스러움’을 가지고 결말이 아닌 반복과 흐름을 보여준다. 그 속엔 ‘꼭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위안이 담겨있다. 자연은 항상성을 가지고 인간을 인내하고, 덕분에 안정된 인간은 그 안에서 사회적 항상성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올해도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유독 이맘때쯤 줄줄이 개봉하는 소위 ‘속편 영화들’. 완벽한 결말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없지만, 관객들로 하여금 이야기의 부족함을 용납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이들 영화는 어쩌면 상실이나 실패가 아닌, 두 번째 기회를 갈망하는 현대인들의 집단 무의식의 또 다른 발로라는 생각이 든다.
헤르만 헤세의 <봄의 말>이란 시가 있다. ‘새로움’을 상징하는 봄을 대신해 그는 섣부른 해피엔딩을 찾아 헤매는 이들을 달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살아라 자라나라 꽃피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움트라/ 몸을 던지고 삶을 두려워 말라.”
<노유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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