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장기 컨설팅 프로젝트를 맡았다. 고객이 글로벌 회사라 해외출장이 많았는데 마지막은 한국과 타이완에서 3주간을 일해야 하는 스케줄이었다.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아이 둘을 둔 엄마로서 연달아 3주를 집 떠나 있어야 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우선 여름방학 중인 큰 아이는 서머프로그램에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 해도 직장생활 하는 남편이 18개월이 채 안된 작은 아이까지 보는 것은 무리였다. 고심 끝에 한국에 있는 친정에 작은 아이를 잠시 맡기기로 했다. 늘 친정은 일하는 엄마들의 마지막 보루다.
출장에 필요한 내 옷가지와 아이의 기저귀, 옷, 물병, 장난감 등이 들어간 큰 가방 두 개에 유모차를 끌고 공항으로 향했다. 짐도 많았지만 비행기 안에서 조용히 잠자주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움직이는 아이 때문에 비행 내내 눈 한번 붙이지 못하고 한국에 도착했다.
일하는 엄마는 늘 미안하다. 엄마 없이 지내야 할 큰 아이에게도, 엄마의 빈자리를 메우느라 전전긍긍할 남편에게도, 한동안 엄마 아빠 없이 외할머니랑 함께 지내야 할 작은 아이에게도, 난데없이 외손주를 봐야 하는 친정 부모님께도… 한국에 도착해서 아이를 친정에 떨어뜨려 놓고 호텔로 가는 길은 무척이나 멀었다.
한국은 연일 푹푹 찌는 무더위였다.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날씨라는데 LA보다 습해서 그런지 체감 온도는 그것보다 훨씬 높은 것 같았다. 친정 부모님은 정성스럽게 아이를 봐 주셨지만 워낙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셔서 아이는 늘 더운 기온에 노출되어 있는 듯 했고, 친정 엄마는 엄마대로 놀고 싶어하는 아이를 데리고 더운 날씨에 자주 외출을 해야 해서 지치시는 듯 했다.
주말에 한번씩 아이를 보러 가면 그 조그만 얼굴과 몸이 모기 물린 자국으로 벌긋벌긋 했지만 도배한지 얼마 안됐다는 벽과 비싼 가죽소파에 사정없이 그려진 볼펜 자국들을 보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한편 LA 팀으로부터는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매번 부자가 같이 놀러간 사진만 보내고 공부는 좀 하고 있느냐는 엄마의 질문에는 대답이 없었다. 큰 아이가 동생이 자기를 잊어버리면 안된다며 동영상을 찍어 보냈다. 외할머니한테 보냈더니 아이가 형의 비디오를 무한 반복해 보고 있다고 했다.
약간의 긴장은 삶을 활기차게 한다. 고된 3주간의 일정이 끝나니 좀 살 것 같았다. 불편했을 가족들로 인해 마음이 무겁기는 했지만 학교와는 다른 환경에 놓여 오랜만에 도전이 되는 시간이었고, 그간 내가 봐 왔던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강의하는 시간을 빼고 거의 집에만 있었던 나의 일상이 좀 더 역동적이고 타이트 해졌다.
세 달 같았던 3주가 지나고 LA에 도착한 날, 떨어져 있던 가족의 상봉은 눈물겨웠다. 엄마! 하며 달려온 큰 아이는 동생부터 찾았고 세 부자는 오랜만에 나란히 앉아 싱글벙글하며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었다.
큰 아이가 방학 동안 성경이야기 대회인지에 나가 상으로 받은 자전거를 가지고 동생에게 갔다. “형아랑 자전거 탈까?” 고작 몇 단어 밖에 모르는 둘째가 “응!”하고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둘은 사이좋게 앞뒤로 앉아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크게 변한 건 없었다.
<지니 조 마케팅 교수·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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