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남태평양 마우케 섬 주민 600여명 가운데 3분에 1에 가까운 180여명이 기생충 질환을 앓고 있었다. 그러자 미 전염병연구소가 질환퇴치에 발 벗고 나섰다. 전염병연구소는 주민들을 상대로 철저한 위생교육을 실시했으며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년 후 이 섬 주민들의 기생충 질환 감염률은 5%로 떨어졌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나타났다. 기생충 질환은 줄어든 반면 천식과 아토피 같은 앨러지성 질환이 무려 5배나 늘어난 것이다. 원인규명에 나선 연구진은 지나친 청결이 면역체계의 불균형을 불러와 생긴 것임을 밝혀냈다. 의학에서 ‘위생 가설’(hygiene hypothesis)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위생 가설’은 어린 시절 약한 병원균에 감염되면 나중에 강한 병원균을 이길 수 있는데 청결이 지나치다 보면 그럴 기회가 없어 면역력이 떨어진다는 이론이다. 이 가설은 왜 감염가능성이 큰 대가족 가운데서 자라난 아이들이 앨러지에 덜 걸리고 위생상태가 좋은 선진국에서 앨러지성 질환들이 더 많이 발생하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물론 청결은 건강에 중요하다. 깨끗하면 감염성 질환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청결이 지나칠 경우 외부대응 면역체계가 약해지는 반면 자가 면역체계는 과도하게 발달해 면역에 교란을 초래한다. 그러면서 앨러지성 질환을 부르는 것은 물론 최악의 경우 신체 내의 인슐린 분비조직까지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 의학자들의 설명이다. 선진국의 소아당뇨 발병률이 후진국보다 훨씬 높다는 사실은 이런 설명을 뒷받침한다.
지나친 청결이 오히려 병을 부를 수 있다는 위생 가설은 9일 보도된 연구 결과로 또 한 번 타당성이 확인됐다. 핀란드 의료진은 생후 9~52주된 유아 397명을 대상으로 1년 간 애완동물을 키우는 집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집 아이들의 건강을 조사한 결과 애완동물을 키우는 집 아이들이 호흡기 질환과 귓병에 걸릴 확률이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특히 밖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개를 키우는 집일수록 아이들이 더 건강했다며 “애완견이 더 많은 먼지와 박테리아를 가져오고 유아들이 여기에 노출되면서 면역력을 키우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청결과 건강의 상관관계와 관련해 쏟아지는 연구 결과들은 “아이들은 흙장난도 하고 적당히 때를 타야 건강해 진다”던 할머니들의 말씀이 의학적으로 상당히 근거가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남자아이들에 비해 청결한 여자아이들이 앨러지나 천식에 더 많이 걸리는 것도 지나친 청결의 부작용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흙장난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흙에 사는 마이코박테리움이라는 무해한 세균이 몸에 들어가면 행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인 세르토닌 분비를 촉진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을 무조건 깨끗하게만 키우려 하는 부모들은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봐야 할 듯싶다.
더러움과 세균에 적당히 노출시키는 것은 오히려 아이들 건강에 도움이 된다. 마찬가지로 적당한 시련과 어려움은 아이들을 정신적으로 강하게 만들 수 있다. 너무 곱게, 그리고 깨끗하게만 자란 온실 속 화초는 생명력이 약한 법이다. 청결 또한 과유불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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