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때때로 사람들과의 거리를 측량한다. 가족이나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 실제 친하지는 않지만 가깝게 느끼는 사이, 옆에 있지만 멀찍한 사이, 거리 측정의 근거를 찾기 힘든 타인 등 인간관계의 멀고 가까움을 이야기한다.
결국 우리는 각자가 규정한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렇게 집중해야 할 사람들이 생기고, 무관심해도 되는 이들이 생겨난다. 이는 소비생활에도 절대적 근거를 제시한다. 개인이 설계하는 인간관계도는 이토록 중요하다.
하지만 사실 타인은 실제라 하긴 힘들다. 빛의 부재를 뜻하는 어둠이 실제가 아니듯, 타인은 개인의 관계도 안에서 주관적으로 규정되는 하나의 대상일 뿐이다. 빛이 드는 순간 사라져버리는 어둠처럼, 일단 ‘관계’라는 끈이 놓이면 타인의 온전한 의미는 어느 정도 희석된다. 물론 깊고 얕음 같은 질적 차이는 계속되지만.
관계는 상호성을 갖는다. 이상적인 관계를 꿈꾸는 사람들은 이 ‘상호성’이라는 벽 앞에서 종종 커다란 좌절과 맞닥뜨리게 된다. 상대방이 나와는 다른 인간관계의 그림을 갖고 있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어차피 나와는 다르고, 이왕 내가 어찌하지 못할 미지의 영역이라면 유연함을 가지고 역동적인 탐험을 시작해 볼 수도 있는 일이다. 그 가운데서 불안이나 두려움이 아닌 설렘을 찾을 용기가 있다면 말이다.
주위에 부쩍 외로움을 토로하는 지인들이 많다. 외로움 자체는 현대인들에게 별스러울 것 이 없지만, 이들 대부분이 탓하고 있는 것은 성인이 되어 물 설은 환경에 정착하게 된 자신의 처지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것이 낯설고 새로운 어린 나이에 겪는 변화라면 무에가 그리 대수일까. 하지만 그들은 떠나온 것은 이미 지극히 익숙하고 편해진 것들이다. 게다가 주어진 삶은 생활방식과 사고의 전향을 강요하는 타국살이가 아닌가.
그중 유독 힘든 것이 새로운 인간관계의 시작이다. 수차례 시행착오로 조심성이 커진 ‘어른 아이’들은 완고해진 외형만큼 강한 상처에 대한 내성을 갖지 못할 때가 많다.
상처 없는 관계 형성을 위해 이들이 우선 집중해야 할 것은, 또 무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또 이렇게 거대한 군중 속에서, 혼자라는 생각은 과연 정당한 걸까.
결국 자신을 고립시키는 것은 타인에 대한 스스로의 정의라는 생각이 든다. 외로움이 싫다면 우리는 인근 타인들에게 대한 자신의 반응을 돌이켜보고, 주변 환경의 쓸쓸함을 상쇄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더 나아가 진정한 소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들을 고려해야 한다. 소모적인 논쟁이 아닌, 따뜻한 대화를 원한다면 더욱 그렇다.
사실 상대방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며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줄 거라는 가정은 형이상학적 이상에 불과하다. “사랑을 주고받는 사이에서 아무리 다가서도 얇은 빈틈, 즉 앵프라맹스(inframince)가 생긴다”는 화가 마르셀 뒤샹의 말처럼 타인에게서 온전한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바람이다.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보다, 그들에 대한 개개인의 반응이 인간을 더욱 깊은 고독으로 혹은 극한의 기쁨으로 인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친 세파에 휩쓸려 보내서는 안 될 타인들이 있는지 주위를 돌아보자. 그리고 운 좋게도 그런 사람들이 발견된다면 조용히 다음의 프란츠 카프카의 고백을 떠올려보자.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우리 모두가 본래 불완전하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출발해야 한다.”
<노유미/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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