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 사랑’이라는 말을 직장 동료에게 영어로 표현하자니 적당하게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사랑은 하류로만 흐른다는 뜻의 “Love flows downstream.” 이라고 했었다. 결코 역류로 흐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집에 와서 한영사전을 펼쳐보니 더 길고 복잡한 영어로 표현되어서 오히려 내가 급조한 말이 더 적당해보였다.
인터넷에 떠도는 농담 중에, 어머니와 아내가 물에 빠지면 누구를 먼저 구조할 것인가 하고 아들에게 묻는 이야기가 있다. 아들은 서슴지 않고 아내라고 대답한다. 이유는 어머니는 자신의 선택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이 없지만, 아내는 자신이 선택했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이 구조할 책임이 있단다.
세태가 너무 바뀌어서 ‘효도’라는 말은 이제 사전에서나 찾아볼 정도로 옛말이 되었다. 서양인들 가정에서는 자녀가 18세만 되면 집을 나가도록하지만 동양인 가정은 되도록 오래 자녀를 붙들고 있으려한다. 그러니 한인 이민가정에서 자녀들과의 마찰이 심하다. 그러다 자녀들이 결혼해 자신의 가정을 갖게 되면 그때부터 부모는 관심 밖이 된다. 이미 하류로 흘려보낸 자식에 대한 애틋한 사랑은 돌아올 줄 모른다.
자녀들이 품을 떠난 후 사랑이라는 가족 곳간에 무엇이 남았는지 살펴본다. 평생 ‘웬수’ 라며 삿대질하던 배우자에 대한 사랑이 남았는가? 아니면 꺼져가던 부부간의 사랑의 불씨라도 남았는가? 자식에게 보낸 사랑은 흘러가 버렸고, 배우자로부터 외면이라도 당하면 이제 무엇이 남았는가?
직장 일로 바쁘다며 평생 가족을 외면하며 살아오지나 않았는지,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며 가족들과의 유대관계를 허물어뜨리지나 않았는지, 저축은 모른 채 낭비벽에 빠져 살지나 않았는지, 가족을 위해 자신이 희생하는 대신 자신을 위해 가족을 희생시키지나 않았는지, 교회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가족을 등한시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한다.
인생 말년에는 자신이 뿌린 씨앗들을 거두게 된다. 가족이라는 밭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는 이때 비로소 깨닫는다.
사랑을 하류로 내려 보내지 않으면, 부모에 대한 증오가 역류로 흘러온다. 부모에 대한 의도적인 분노가 부모가 생각하는 반대 방향으로 배출된다. 부모에게 심한 매를 맞으며 자란 사람은 호전적이 된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리운 딸은 나이 많은 남자를 사모한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산에 올라 뒤를 돌아보며 반성할 시간을 가져야한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에 모두와 화목해야한다. 그래서 ‘지금’이라는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자녀들과도 화해해야한다. 사랑이 역류로 흘러올 것이란 기대는 접고, 자녀들에게 용서를 구할 것은 구해야한다. 아무리 일이 중요하더라도 가족과 대화할 시간을 가져야한다.
자녀가 입을 닫으면 자녀에게 일어나는 일을 알 길이 없어진다. 가족 간 대화의 창구를 항상 열어둬야 한다. 화를 내든지, 자기주장만 되풀이한다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부모라는 체면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가족관계 개선을 위해 심리상담 치료를 받아야한다면 그렇게 하기를 권한다. 세상 떠날 때 남는 것은 어차피 자식 농사가 아닌가?
사랑을 받아본 사람들이 사랑할 줄 안다. 그래서 불안정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커서 알게 모르게 잠재적인 사고방식이 행동으로 나타난다. 이것을 스스로 빨리 발견하고 빨리 고칠수록 더 강한 사랑이 하류로 내려가기 때문에 증오가 역류로 올라오지 않는다. 장마에 하수구가 막히면 악취가 나듯이, 증오가 역류로 흐르면 가정은 겉잡을 수없는 소용돌이에 빠진다.
자녀들의 부모에 대해 맺힌 응어리는 반드시 풀어주고 떠나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자녀들은 그 증오에서 벗어날 때까지 크게 방황할 수 있다. 그리스도로부터 물려받은 애틋한 사랑을 자녀들에게 아무런 기대 없이 내려 보낼 때 튼튼한 하나님의 가정을 이룰 수 있다. 비록 돌아오지 않는 일방적인 사랑이라 할지라도…
폴 손 /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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