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좌제는 개인이 저지른 죄를 가족과 친척, 이웃에게 함께 묻는 제도다. 전근대적 봉건 사회에서는 이런 제도가 동서양을 불문하고 널리 시행됐다. 집권자에게 특히 민감한 대역죄 같은 경우 사돈의 팔촌까지 9족을 멸하기도 했다. 이 제도는 이제 거의 사라졌다. 올 초 북한의 김정은이 탈북자를 ‘배신자’로 규정하고 “배신자는 3족을 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이는 북한 같이 극히 야만적이고 예외적인 나라나 가능한 얘기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도 연좌제 비슷한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 부모 손을 잡고 미국에 온 불법 체류자 자녀에 대한 처분이 그렇다. 미국에 불법으로 살게 된 데 대해 이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 그럼에도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자라 미국밖에 모르는 사실상 미국인인 이들은 엄청난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 대학 다니는 동안 학비 감면 혜택도 못 받고 졸업을 해도 제대로 된 직장에 취직을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진짜 두려운 것은 언제 어디서 사법 당국에 걸려 추방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한번 추방되면 다시 미국에 들어올 수 없으며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한다. 불법 체류자의 절대 다수를 이루고 있는 라티노들은 2008년 오바마 당선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가 불법 체류자 자녀에게 합법 체류 자격을 주는 이민 개혁을 공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임 후 3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이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물론 이는 오바마만의 책임은 아니다. 연방 하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 일부 세력은 어떤 형태로든 불법 체류자 사면을 결사반대하고 있다. 이들의 압력 탓인지 불법 체류자 추방 건수는 오바마 행정부 들어 오히려 보수적인 부시 때보다 늘어났다. 오바마 취임 후 추방 건수는 매년 기록을 경신, 2010년에는 40만을 쫓아냈는데 이는 부시 시절인 2008년보다는 10%, 2007년보다는 25% 늘어난 것이다.
그러던 오바마가 지난주 깜짝 행정 명령으로 16세 이전 미국에 온 30세 미만 불법 체류자 가운데 범죄 기록이 없고 학교를 다니거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에 대한 추방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2년마다 자격을 심사받아야 하지만 사실상 무기한 미국에 체류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한 가지 의문은 이처럼 간단히 추방을 유예할 수 있는데 지난 3년 반 동안 뭘 하다 선거를 다섯 달 앞두고 이 조치를 취했느냐 하는 점이다. 공화당도 하나 나을 건 없지만 불법 체류자 문제를 득표 전략으로 이용하는 오바마 모습도 과히 아름답지 않다.
본인의 잘못 없이 미국 땅에 와 무료로 중고교 교육까지 받은 이들을 추방하는 것은 비인도적일뿐 아니라 귀한 인력 자원의 낭비다. 은퇴자는 나날이 늘어나고 평균 수명은 갈수록 길어져 이들을 부양할 근로자가 한 사람이라도 아쉬운 지금 더욱 그렇다. 불법 체류자 자녀에 대한 사면은 미국이 조속히 해결해야 할 과제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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