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곁에 있어도 때로 외롭고 때로 고독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신은 내게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외로움을 달래고 고독을 위로할 친구를 주었다. 바로 음악이다.
요즘 한국에서 잘 나가는 인기 강사 김정운 교수는 어느 강연에서 고독하고 힘든 독일 유학생활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건 슈베르트의 음악이라고 말했다. 그에게도 음악은 외로움과 고독의 치료제였던 모양이다.
나에게 음악은 늘 친구 이상이었다. 아니, 삶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 내게 “당신을 위로해주는 음악은 어떤 곡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쉽게 이야기하기 힘들 것 같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듯, 내가 아끼는 곡들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내가 아끼는 수많은 곡들 중 요즘 아이딜와일드 산길을 운전하며 가장 많이 듣는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2번 피아노 협주곡이다. 이 곡엔 청년 라흐마니노프의 아픔과 극복의 과정이 담겨있다. 그가 야심차게 세상에 내놓은 1번 교향곡이 평론가들로부터 ‘지옥에서나 연주되어져야 할 음악’이라는 혹평을 받게 되자, 그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정신상담까지 받아야 될 지경에 이르렀던 그는 우울함을 떨치기 위해 2번 피아노 협주곡 창작에 몰두했다.
마침내 이 곡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그는 우울증을 털어내고, 명성도 얻게 됐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우울했던 마음이 환해지는 기분이 드는데, 실제로 음악 치료사들은 이 곡을 통해 많은 우울증 환자를 치료한다고 한다.
어린 시절, 나를 위로한 음악은 슈만의 ‘어린이 정경’이란 곡이었다. 이 곡을 들으면 흑백사진 속 어머니의 모습과 초등학생이었던 우리 형제의 모습이 떠오른다.
대학교를 마치고 결혼한 어머니는 뒤늦게 석사학위를 시작하셨다. 우리 형제를 키우며 대학원 졸업 연주를 준비하셨는데, 그때 어머니가 선택한 곳이 바로 슈만의 ‘어린이 정경’이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하는 어머니 덕분에 고작 10살이었던 우리 형제는 이 곡을 듣고 또 들어야 했다. 하지만 땀 흘리며 피아노를 연주하던 어머니의 뒷모습과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에게 이 음악은 위안과 평안을 주었다.
한참 후에 알게 되었지만, 어머니가 수많은 곡들 중 졸업 연주곡으로 이 곡을 선택한 건 우리 형제를 위한 선물이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어서일까? 지금도 이 곡을 들으면 나는 동심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나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진다.
클래식이든 트로트든 마음을 위로해 준다면 그것은 우리 인생의 벗이다. 아버지가 좋아하던 패티 김의 노래와 어머니가 즐겨 부르던 이미자의 노래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사춘기에 즐겨듣던 전영록과 조용필의 노래는 내게 인생의 깊이를 가르쳐 주었고, 성인이 되어 듣던 김건모와 신승훈의 사랑 노래는 사랑과 이별, 그리고 아픔을 느끼게 해주었다. 음악에 귀천은 없다. 들을 때 마음이 따뜻해지면 그것으로 족하다.
힘들고 지친 가족, 마음 아픈 친구가 있다면, 위로의 말 대신 위로의 곡을 들려주자. 그들의 귀에 이어폰을 꽂아주고, 따뜻한 눈빛을 보내주자. 이미 그것으로 충분한 위안이 될 것이다. 음악은 그 어떤 진통제보다, 그 어떤 안정제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앤드류 박/ ‘박트리오’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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