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마 빈 라덴이 저지른 죄악 중 용서받지 못할 것의 하나는 가뜩이나 장거리 여행에 힘든 여행객들의 출입국 심사를 더욱 까다롭게 했다는 점이다. 2001년 9월 11일 이전까지 형식에 불과하던 미국 공항에서의 출입국 심사와 소지품 검사는 이제 여행의 기쁨을 빼앗아가는 주 요인이 됐다.
비행기 한 번 타려면 신발 벗고 컴퓨터 꺼내고 주머니에 있는 동전까지 털어내야 한다. 몸에 손대는 대신 전신 검색기가 등장했지만 알몸 투시를 놓고 여행자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거기다 재수 없이 비행기 여러 대가 동시에 도착하면 장시간 줄을 서 입국심사를 받아야 한다. 입국 심사관이나 세관원들의 질문도 전에 없이 까다로워졌다.
이런 모든 번잡스러움과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올 2월부터 정식으로 시작된 ‘글로벌 엔트리’(global entry)가 그것이다. 미리 ‘믿을만한 여행자’라고 신고해 정부로부터 인정받으면 미국 내 20개 공항에 마련된 키오스크에서 컴퓨터 스크린을 몇 번 누르는 것으로 출입국 심사를 대신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에 가입하려면 온라인으로 등록한 후 100달러의 수수료를 낸 후 인터뷰 날짜를 잡아야 한다. 당국이 인터뷰와 신원조회를 거쳐 믿을만한 사람으로 인정하면 그 후 5년간 이 프로그램을 통해 간편한 출입국 심사를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 이용자들은 기다리는 시간을 평균 70% 줄일 수 있고 이용자의 75%는 출입국 수속 시간이 5분을 넘지 않는다.
90년대 미국은 캐나다와 유럽 여행자의 편의를 위해 이들의 입국을 간편하게 한 INSPASS 프로그램을 실시한 적이 있었는데 2002년 이민국(INS)이 연방 세관과 합쳐져 관세 국경 수비국(CBP)로 바뀌면서 이 프로그램도 없어졌다 ‘글로벌 엔트리’란 이름으로 부활한 것이다. 전에는 성인 미 시민권자나 영주권자, 멕시코와 캐나다, 네덜란드 국적자 등 일부에 국한됐던 이용 자격이 최근에는 18세 미만 청소년까지 포함하도록 바뀌었다. 앞으로는 한국인 등 타국적자에게까지 확대된다고 한다.
아직도 잔존하는 빈 라덴 추종자들로부터 미국과 여행자의 안전을 지키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편안하고 자유롭게 시민과 외국인들이 세계 각국을 드나들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외국과의 교류가 활성화될수록 관광 수입도 투자도 늘어나고 무엇보다 자유로운 사람들의 이동이야말로 자유를 건국이념으로 하는 미국의 정신에 부합된다.
전문가들은 아직은 이 프로그램 이용자 수가 100만 정도로 소수지만 그 편리함을 경험할수록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글로벌 엔트리’가 빈 라덴이 빼앗아간 여행의 기쁨을 되살리는데 일조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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