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라디오 방송에서 십대 청소년의 프롬파티 비용에 대한 보도를 들었다. 올해 고등학생 프롬파티 비용이 평균 1,078달러라는 내용이었다. 드레스 혹은 턱시도 비용, 머리, 화장, 액세서리, 꽃, 저녁, 댄스 티켓, 리무진 등을 포함해서 하룻밤에 쓰는 돈이 1,000달러가 넘어간다니, 그 비용은 대부분 부모가 지출하거나, 일부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감당할 것이다. 그리고 다들 이 비용이 하룻밤 파티를 위한 돈으로는 과하다는 데 동감할 것이다.
프롬파티의 비용이 이렇게 급격히 상승한 것에 대한 이유가 흥미로웠다. 보도에 따르면, 리얼리티 TV나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연예인들의 생활 스타일이 밀접하게 일반인들에게 들어왔고, 그들처럼 즐기고자 하는 욕구가 그 배경이라는 것이다. 하룻밤에 평균 1,078달러를 지출해서 그날 밤을 최고의 밤으로 만들겠다는 17세, 18세들의 판타지이자 현실이다.
이 보도를 들은 시기와 비슷하게 한국 사람들이 ‘명품’에 열광하는 이유에 대한 보도를 접하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은 유독 사넬, 루이비통, 알마니 등 수입 명품에 대해 애착을 보이는데, 일명 ‘3초 백’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정도라고 한다. 즉 길을 가다 보면 3초 마다 만날 수 있는 가방이 최저 100만원을 호가하는 루이비통이라는 것인데, 관련 업체 매출은 한국에서 매년 10% 성장률을 기록한다고 한다.
한국을 방문할 때 마다 들었던 의문을 이 보도가 짚어주고 있었다.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이 50%에 육박하고, 한국 남자 평균 월급이 228만원이라고 하던데 100만원 넘는 명품 백에 명품 신발에 30만원씩은 넘어 보이는 백화점 상품 옷을 입고 출근하는 20대 아가씨들을 볼 때마다, 또 낮시간에 쇼핑을 즐기는 30,40대 주부들을 볼 때마다 내 머리 속은 집세와 식비, 교육비와 공과금, 여가 생활비 등을 계산하면서 그들의 생활정도를 짐작하느라 바삐 돌아간 적이 있었다. 과연 월급으로 한달 생활을 꾸려가면서 명품을 소비할 만큼의 경제적인 여유가 되는지 괜히 그들의 가계가 걱정되고 얼핏 들은 ‘사채’니 ‘스폰서’니 하는 근거 없는 추측들로 마음만 심란해졌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명품’에 대해 열광하는 이유에 대한 분석 역시 흥미로웠고 이해할 만 했다. 한국 사람들은 자신이 명품을 들고 있을 때 남들이 그 제품이 고가의 제품이라는 것을 인지해 주는 데서 오는 만족감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에게 대접 받기 위해, 아니 더 본질적으로는 무시당하지 않기 위한 방어 기제로 명품을 선호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 반대로 남들에게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아니 더 본질적으로는 남들보다 우위에 서 있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기제로 명품을 선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국 고등학생들의 프롬 경향과 한국의 명품 소비 경향에는 공통점도 차이점도 있어 보인다. 미국 고등학생들의 프롬은 기본적으로 그날 밤 신데렐라와 왕자가 되어 보자는 판타지에 기인한 것이고, 한국인들은 명품으로 자신이 과시되거나 보호된다고 보는 판타지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 한국에서 이런 판타지가 통용되는 데에는 현실적으로 그 판타지가 효과가 있게 된 사회적 환경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허위의식을 갖게 하고 적극 조장하는 소비경제, 문화 시스템이 한국 사회에 구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미국의 학생들은 프롬으로 자신을 즐기고 최고의 재미를 누리고자 하는 자신의 기본 욕구에 충실하다. 반면 한국 소비자들은 자신을 즐기기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여 자신의 행동마저 지배당하게 되는 왜곡된 욕구에 충실한 것이다.
문선영/ 퍼지 캘리포니아 영화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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