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작은 혹이 생겨 치료를 받으러 갔다. 담당의사는 한두번 쓰윽 살펴보더니 “째면 됩니다”라는 말을 던지고, 옆에 있던 간호사에게 “쨀 준비해주세요”라고 부탁하고는 진료실을 황급히 빠져나갔다.
왜 째야하는지, 병명이 무엇인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메디컬스쿨 협회 데럴 커크 회장은 “의사들에게 가장 부족한 점은 환자와 소통할 수 있는 사회성이다”고 전제하고, 2015년부터 MCAT(Medical College Admission Test)에 환자의 행동 심리, 문화적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소통을 원활하게 하도록 돕는 심리학, 사회학 과목을 포함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의사의 인성, 사회성을 키우려는 노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도됐다. 1971년 국립인문학재단은 의학에서의 인간 가치, 의료 윤리의 중요성에 관해 강조하기 시작했다.
1981년 <의료 진료에 관한 철학적 근거>라는 책이 “의학은 본질적으로 과학과 기술, 인문학의 관심이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여 문화적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도구”라고 강조하면서 의과대학들은 인문학 강좌를 다투어 개설하였다. 또한 뉴욕의 마운트 사이나이 의과대학은 1987년부터 인문학, 사회과학전공 지원자 35명을 매년 뽑아왔다.
개정된 MCAT를 치르는 예비 의사는 메디컬 스쿨 과정을 마친 후 환자를 좀 더 친절하게 대하고, 좀 더 자세히 설명(현재 평균 진료시간은 8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의사와 변호사는 다를 바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변호사는 남을 등쳐먹는데 그치지만 의사는 등쳐먹은 후 죽이기도 한다”고 비꼰 러시아 작가 안톤 체홉을 설득 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즉 개정된 MCAT가 학부 전공의 방향타를 바꾸고 새로운 시험을 치르는 요령습득에는 발 빠르게 만들겠지만 의사가 되려는 동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
의료계에서 의사의 인성, 사회성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역적 형평성과 전문분야 쏠림현상에 있다. 오는 2013년 미국에서는 136개 메디컬 스쿨에서 2만1,000명의 의사가 배출될 것이다.
그중에 시골에서 진료하려는 의사는 몇이나 될까. 특히 주치의 즉 1차 진료의사(primary care doctor)가 되기를 원하는 졸업자는 얼마나 될까. 현재 미국 전체 인구의 20%가 시골에 거주하지만 의사의 9%만이 그들을 돌보고 있다.
워싱턴대학 메디컬 스쿨 자료에 따르면 워싱턴 주 39개 카운티 가운데 28곳이 1차 진료의사가 부족한 상태다. 예을 들어 더글라스 카운티는 거주민 2만7,500명에 의사 6명, 스카마니아 카운티는 거주민 8,500명에 의사 1명이 있다. 의사를 보려면 70마일을 운전해서 나가야 하는 마을도 있다.
전국적으로 1990년대만 하더라도 시골 병원이 구인광고를 내서 의사를 구하는데 2~3개월 걸리던 것이 요즘은 평균 18개월 걸린다.
도제식 실습위주 교육을 정리하고 체계적으로 의사를 훈련시키겠다는 목적으로 1893년 창설된 존스 홉킨스 메디컬스쿨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때부터 기초 의학과 임상이 철저하게 분리되고, 의학적 대상이 되어야 할 인간이 과학적 대상으로 변했다.
환자의 존재, 가치, 전통을 느끼고 동감하는 의사가 아니라 실험, 계량, 일반화 기술에 의존하는 기술자로 전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리 개혁된 MCAT를 치른 의사라 하더라고 그가 만일 ‘기술자’로만 남는다면 “김태희처럼 얼굴을 고쳐 주세요”라는 주문을 받고, 외모>출세>권력으로 점철되는 사회 문화적 요인, 불평등을 호소하는 인간적 요인에 대해 깊은 고뇌를 할 시간이 없다. 밀린 메디컬 스쿨 학자금 융자부터 먼저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니얼 홍/ 교육 전문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