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질 것인가” -얼마 전 한국의 한 정치인이 던졌다는 질문이다. 양보 없는 한국 정치판에서 공개적으로 발설된 질문이라니 실로 귀를 의심할만하다. 비단 정치뿐이 아니다. ‘지는 것’에 기쁨을 느끼거나 그것이 커다란 미덕이라는 신념을 갖기는 사실 힘들다.
지는 것에 누가 쉽게 동의할 수 있을까. 마침내 이겨 자신의 이름을 만천하에 떨치는 것이 목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이 홍수라는 사실만 봐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이기는 것에 집착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는 것에는 종종 여러 불이익이 따르게 마련이다. 금전적이든 사회인지적 불이익이든지 간에, 결국 지는 건 쓰라린 패배의 기억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우리는 모든 일에 이길 수 없다. 매우 자명한 진리이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무능함을 돌아봐야 하고, 경쟁력 없는 자신의 환경을 인정해야 하며, 때때로 대의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신념을 상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쪽이라도 얼마간의 상처나 자괴감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로, 이 질문의 백미는 단연 ‘어떻게’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지는 쪽을 선택한 기개가 그렇고, 이후 자신의 선택에 능동적인 동기부여를 하겠다는 의지가 그렇다. 더욱이 어떠한 외부 보상을 기대하지 않은 채 내재적으로 유발된 동기를 찾을 수 있다면, 지는 것은 더 이상 비굴하거나 지루한 기억만으로 남지는 않을 것이다.
평가나 경쟁을 부추기는 환경에서는 성공적인 과제 수행을 위한 긍정적 동기부여나 창의성 발현이 불가능하다고 심리학자들은 지적한다. 당연하다. 사회가 그어놓은 ‘승리’와 ‘성공’이라는 울타리를 향해 무기력하게 쓸려가던 중, 홀로 방향을 돌려 미지의 울타리를 향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그 울타리의 이름이 세상이 말하는 실패에 가깝다면, 차라리 어정쩡한 주변인 그룹에 남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최근 한 친구와 자신의 무력함을 알아가는 것과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스스로의 사회적 입지를 논하기에 여러모로 불완전한 청춘의 새로울 것 없는 고백이다.
일단 최선의 능동을 발휘하는 삶을 살아보자는 게 친구와의 결론이다. 성공을 떠올릴 때의 결기와 활기는 실패를 맞닥뜨리는 순간 사라지는 게 보통이다. 실패는 어쨌거나 못마땅한 것이니 이상할 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지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 그러니 매순간 해내고 이겨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되, 예기치 못한 패배에 당혹스럽지 않을 수 있는 방법도 하나쯤 터득해보자는 거다.
가끔은 능동적으로 ‘어떻게 질 것인가’를 고민해보는 건 어떨까. 그 용기 있는 결정으로 생각지 못했던 인생의 문들이 열리고, 더 큰 도약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며 평생의 삶에 자양분이 될 지혜를 얻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노유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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