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 이후 3대 후계체제가 큰 차질 없이 조기 안정되는 것 같다. 그것도 과도적 집단지도체제가 아니라 곧 바로 김정은 유일영도체제가 확립되는 바탕 위에서 후계체제가 구축되는 것 같다. 수령의 유일적 영도를 전제로 일사불란하게 가동되는 주체사상에서 야기되는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주체사상의 ‘후계자론’에 의하면 후계자가 되기 위한 자격요건으로서 김일성 혁명가계혈통의 계승 여부를 핵심요소로 규정하고 있으며, 후계자의 능력, 자질, 경험, 카리스마 등은 부차적 요소일 뿐이다. 김정은이 김일성 혁명가계의 혈통을 물려받은 이상 나이, 경륜, 승계요건 미비 등은 수령우상화를 전제로 유일영도체제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에서 해소될 수 있는 사소한 요소일 뿐 외부에서 생각하는 만큼 큰 걸림돌은 아니라 할 것이다.
북한은 주체사상을 통치철학 내지 국가운영체제로 신봉하는 나라이다. 따라서 북한의 독재는 다른 나라의 독재와 판이한 성격을 띠고 있다. 주체사상이 규정하는 후계자의 진정한 의미는 인민의 존경의 대상인 ‘영도자’가 된다는 뜻이지, 단순한 권력의 상징인 당 총비서, 국방위원장, 또는 최고사령관이 된다는 뜻이 아니다. 전자가 자애로운 ‘어버이’로서 인민을 돌보고, 인민은 감사한 마음으로 ‘어버이 수령’에게 효성과 충성을 바치는 고도의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한 개념인 반면, 후자는 단지 권력을 상징하는 독재적 개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90년 대 초부터 북한경제가 급전직하 침체의 나락으로 추락하면서, 배급제 폐지로 인해 인민의 생계와 생존이 위협을 받게 되면서, 인민의 어버이 수령에 대한 경애심이 사라지고 유일영도체제의 정신적 토대가 무너지게 된 점이다. 이처럼 유일영도체제를 도저히 끌고 갈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폭력과 공포로 무리하게 끌고 가는 체제가 선군체제인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북한체제는 수령과 지배계층이 사상적 유대로 응집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수령과 인민이 윤리적 유대로 결속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기득권과 공동운명체 의식과 폭력에 대한 공포심을 바탕으로 끌고 가는 ‘마피아 범죄조직’의 성격을 띤 정치집단에 불과하다.
3대 후계체제를 뒷받침할 4세대(1970-1990)는 국가경제의 혜택을 누린 마지막 세대로서 주체적 자존심이 상당 수준 남아 있는 세대인 점에서 3대 후계체제를 수용하는 데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고난의 행군’시대에 태어나 배급제 폐지로 인해 굶주림과 발육장애와 인구감소 등 희생을 강요당해 온 세대, 시장에 의존하여 생계와 연명수준에 얽매어 온 ‘시장세대’(1990년 이후)가 사회 각층에 진출하기 시작하는 2015년경에 즈음해서 개혁, 개방을 요구하는 자유화, 민주화의 바람이 노도광풍처럼 휘몰아 칠 위험이 수면 밑에 잠재되어 있는 점이다.
세대교체는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는 자연현상으로서 세월이 흐를수록 시장세대가 북한사회의 주도세력으로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시장세대는 경제위기의 최대 피해자로서, 또한 주체사상의 이념화 교양사업의 씨알이 전혀 먹히지 않는 세대로서, 김정은 정권이 선군체제에 의해 무리하게 사회안정을 도모하는 경우 오히려 군대 자체가 체제저항 세력화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할 것이다.
일단 막혔던 둑이 무너지면 재스민 혁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위기상황이 북한 전역을 강타할 것이다. 세상만사는 변한다. 반세기 이상 요지부동 버텨 온 주체사상도, 김일성 세습왕조도 언젠가는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시장세대가 진출하기 시작하는 2015년경부터 세대교체가 본격화 되는 2020년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김명배/ 호서대학교 초빙교수, 전 주LA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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