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가 꿈 꾼 안정된 사회는 각자가 타고난 소질에 따라 교육을 받고 주어진 지위를 받아들이고 그 위치를 지키는 것이다. 그 논리를 전개하기 위해 제자 글라우콘에게 신화를 들려주며 이렇게 물었다.
“신은 통치능력을 지닌 사람에게 금을, 그를 돕는 이들에게 은을, 농민과 장인들에게는 철과 구리를 섞어 주었다. 그들은 자신을 닮은 아이를 낳을 것이며, 철이나 구리의 인간이 통치자가 되면 그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시민들로 하여금 믿게 할 수 있는가?”
제자 글라우콘은 대답했다.
“지금 세대에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후손, 후손의 후손에게는 이 이야기를 믿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글라우콘의 예언은 적중했다. ‘찰스 다윈 이후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로 불린 스티븐 제이 굴드가 “자연 과학의 역사는 인종, 성, 계급에 따라 우열을 가르고 서열을 매기는 오류로 점철되었다”고 비판했듯이 말이다.
그런 생물학적 결정론이 극명하게 적용된 것이 1924년 발효된 이민법이다. 그 당시 미국에 도착한 모든 이민자에게 지능시험을 치르게 한 결과 10명중 8명이 정신박약 판정을 받아 본국으로 발길을 돌렸고 남은 사람들은 노동집약적 일에 종사하도록 종용 받았다.
심지어 그 시험을 미국인 모두에게 치르게 하여 지능지수 별로 직업을 지정하고 정신박약 판정을 받은 사람의 생식기능을 제한하자는 극단적인 제안도 있었다.
유사한 결정론이 교육에서는 상대평가, 절대평가로 주어지는 학점이란 이름으로 존재한다. 벨 커브를 근거로 경쟁을 통해 ‘열공’ 하도록 하려는 의도로 시작된 상대평가는 오히려 해를 가져왔다. 친구를 적으로 만들었고, 배움의 욕망보다는 대리시험이나 일명 ‘족보’ 등 요령에 눈을 뜨게 했으며, 무한경쟁 스트레스는 자살까지 불러왔다.
UC 버클리의 심리학 교수 마티 코빙턴은 “상대평가를 하면 A학점이 희소가치를 갖게 되어 그것을 이루지 못한 학생은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자긍심이 곤두박질 친다”고 경고했다.
상대평가에서 얻은 학점이 과연 절대적 실력일까. 100점 만점 시험에서 한 명만 60점을 받고 나머지는 60점 이하를 받았다면, 학업 성취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그 학생은 1등으로 A를 받게 된다.
그것은 마치 대선후보로 나온 인물 중 뽑아줄 인재가 없다 하더라도 투표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타락하고, 입바른 공약을 더 많이 하는 후보에 표를 던지거나 아예 투표를 포기해야 하는 것과 같다.
나아가 똑같은 내용을 배우는 유기화학이지만 연구대학 X는 상대평가로 수강생의 10%에게만 A를 주고, 리버럴 아츠 대학 Y는 절대평가로 90점 이상 모두에게 A를 준다면 그 차이는 무엇일까.
두 대학이 비슷한 수준이라면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등수가 밀릴 확률이 높은 곳은 상대평가를 하는 전자다. 떠밀린 등수는 학점으로 연결되고, 그 학점은 나중에 전문대학원, 특히 메디컬 스쿨 지원 시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누구나 노력하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기본개념으로 하는 절대평가에도 문제가 있다. 91점과 89점을 전혀 다른 학점으로 평가하는 것을 운명의 장난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우생학 연구를 통해 유색인보다 백인이 우월하고, 빈민보다 부자가 유전적으로 월등하다는 주장을 펼친 자신의 사촌 골턴에게 다윈은 이렇게 편지했다.
“인간의 지능에는 큰 차이가 없다. 차이가 나는 것은 열의와 노력뿐이다.”
학점도 지능과 다를 바 없다. 스티브 잡스의 고교 성적이 4.0만점에 2.65였던 것을 상기하면 된다.
대니얼 홍/ 교육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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