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읽은 알랭 드 보통의 책 ‘불안’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짚어낸다. 왜 우리는 불안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원인을 찾아보고 또 해결책은 무엇일까를 철학적, 문화적, 경제적, 예술적 시각으로 풀어 놓는다.
누구나 불안하다. 어린 나이에는 시험을 못 볼까 불안하고, 가고 싶은 학교에 가지 못할까 불안하고, 나이 들고부터는 취업이 안 될까 불안하고, 집값을 제대로 못낼까 불안하고, 좋은 짝을 못 만날까 불안하고, 사고를 당할까 불안하고, 살이 찔까 불안하고, 지진이 날까 불안하고, 집값이 떨어질까 불안하고, 병이 날까 불안하고, 회사에서 잘릴까 불안하고, 너무 오래 살까 불안하다. 이쯤 되면, 불안하지 않은 상태가 또 불안해질 지경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수입의 1/3을 보험료로 붓고 있다고 했다. 들고 있는 보험의 종류만도 7-8가지. 친구의 올케 언니는 친구의 두배도 넘는 보험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 정도는 기본이라고 한다. 당장 몸 아프면 암보험이나 의료실비보험으로, 다치면 상해보험, 나이가 들어 은퇴하면 연금보험으로 노후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보낼 수 있게 준비를 해놔야 마음이 편하다는 것이다. 그 외 여러 다른 보험들을 얘기해줬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보험사 직원보다 더 유창한 설명이다.
유비무한, 개미와 배짱이 이야기의 개미처럼 추운 날을 대비해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 당연히 바림직한 일이다. 나처럼 사고를 당한 적도 있고, 아픈 적도 있는 사람이 보험 하나 없는 게 어리석고 준비성 없는, 한마디로 대책 없는 것이지 열심히 일해 보험료 붓고 있는 친구가 이상한 게 아니다.
나도 불안하다. 불확실한 현실 앞에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할지 알지 못한 채 해매고 있어 불안하고, 현실 또는 나 자신과 적당히 타협해서 쉬운 길로 나아갈까 불안하고, 나도 모르게 내 몸에 스며든 세상의 눈으로 살아가게 될까 불안하다. 내가 가진 생각들이 옳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갈 때 위선으로 나를 감쌀까 불안하고, 내가 진정으로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까 불안하다.
불안한 사회일수록 보험상품은 날개 돋힌 듯 팔린다. 그 친구 말고도 최근 지인들로부터 보험 들었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단순한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나도 어쩌면 빨리 보험 하나라도 들어놔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보험 몇개 든다고 불안한 마음이 사라질까.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로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를 제시하고 있다.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과 존재 이유, 그리고 우리 삶에서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사유와 그 사유를 삶에 적용함으로써 불안을 없앴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조금 더 많이 갖고, 조금 더 높은 지위에 앉아 수백년 살 수 있을 재력을 갖추고, 많은 사람들이 내 발 아래 머리를 조아린다고 불안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 답을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같은 자리를 향해 전력 질주한다. 다음 달 부을 보험료를 벌기 위해 오늘 열심히 일해야 하고, 은퇴 후 자금을 한푼이라도 더 모으려고 젊은 시절 내내 달리고 또 달려야 한다. 미래의 보장되지 않은 안락함을 위해 오늘을 모두 소진해야 한다면 진정 오늘을 사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불안은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불안을 조장하는 사회, 맘 편히 살아갈 수 없는 사회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당장 나 스스로 내 안의 불안을 먼저 바라보고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보험 약정서 하나 읽을 정도의 수고면 읽을 수 있는 저 책은, 내 안의 불안을 들여다볼 작은 계기가 될 것이다.
김진아/ 광고전략가 쿠알라룸푸르 Young & Rubic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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