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마다 성장기에는 뭔가 꼭 가져야 될 것 같은 품목들이 있다. 그 물건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또래사이에서 대접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지난 90년대 초반에는 나이키 운동화가‘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가르는 잣대였다. 에어 조단 운동화는 특히 인기가 폭발적이어서 새 모델이 나올 때면 운동화 가게마다 줄이 늘어서고 예약이 밀리곤 했다. 주로 남자아이들이 ‘나이키, 나이키’하며 부모를 졸라댔는데, 성화에 못 이겨 샤핑에 나선 부모들은 “아니, 무슨 운동화가 이렇게 비싸냐”며 구두 값보다 비싼 가격에 놀라곤 했다.
이어 스타터 재킷, 에디 바우어 파카, 혹은 특정 브랜드의 백팩이나 샌들이 10대들 사이에서 반짝 유행을 하다가 시들해지곤 했다.
요즘 한국에서는 노스 페이스 패딩 점퍼가 문제의 품목이다. 점퍼의 인기가 너무 높아서 너도 나도 입다보니 거의 교복 수준이 되었다고 한다. 점퍼를 둘러싼 열기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쳐서 한국 뉴스에 몇 번 보도되더니 지난 16일에는 LA 타임스까지 보도했다. 문제의 점퍼 마련하느라 불량 학생들이 돈을 빼앗고 다른 학생이 입은 점퍼를 빼앗는 등 교내 폭력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노스 페이스는 지난 1966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하이킹을 좋아하던 친구 둘이 손을 잡고 창업한 의류업체이다. ‘노스 페이스’란 이름은 어느 산이든 북쪽을 향한 면이 가장 등반하기 어렵다는 데서 따온 이름. 강풍과 눈보라 몰아치는 악천후에도 능히 산을 오를 만큼 보온성이 뛰어난 등산복을 만든다는 의미이다. 로고는 요세미티 국립공원 내 하프 돔의 이미지를 담은 것. 캘리포니아와는 인연이 깊은 브랜드이다.
산이나 들에서 유명하던 노스 페이스가 일상복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은 2000년 전후이다. 옥외활동에 나서는 젊은 층 인구가 늘면서 노스 페이스 역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금 한국에서 보는 것 같은 노스 페이스 열풍의 근원을 짚어보면 지난 2003년 즈음. 래퍼들이 노스 페이스 점퍼를 입고 영화나 뮤직 비디오에 출연한 후 틴에이저들이 따리 입기 시작했다.
뉴욕에서 유행이 시작돼 미국 각 곳으로 퍼져 나갔고 그 와중에 강도사건이 터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5년 워싱턴 D.C. 인근에서 청소년 5명이 노스 페이스 점퍼 17벌을 강탈해 싼 값에 팔다가 체포되었다. 이들은 등하교 시간 학교 주변을 맴돌다가 노스 페이스 옷을 입은 학생이 있으면 접근해 옷을 빼앗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뿐, 한국의 ‘열풍’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에서는 공효진, 하정우, 아이돌 그룹 빅뱅 등 연예인들이 광고 모델로 등장하면서 브랜드의 인기가 높아졌다. 문제는 가격. 25만원에서 70만원까지 한다니 그러잖아도 힘든 살림에 부모들은 기가 막힌다.
게다가 가격에 따라 ‘대장’이 입는 것부터 ‘찌질이’가 입는 것으로 분류가 된다니 부모 마음에 남들 다 입는 점퍼 안 사줄 수도 없고, 기왕 사주면서 ‘찌질이’를 사줄 수도 없어 말 그대로 등골이 휜다고 한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등골 브레이커’.
무엇이든 한번 뜨거워지면 걷잡을 수 없이 끓어오르는 냄비 근성이 한국에서 또 일을 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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