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미국에 잠시 머무시던 동안 타던 차를 팔게 되었다. 중고차 파는 사이트에 올렸더니 전화 문의가 많이 왔다. 차를 사려는 사람들은 차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 꼭 두 가지 질문을 했다. 하나는 가격을 더 깎아 줄 수 있는지 였고, 또 하나는 파는 가격을 좀 낮게 써 줄 수 있는 지였다.
시장에서 시금치 한 단을 사도 깎으려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이고 보면 전자는 당연했다. 그런데 파는 금액을 낮게 써달라는 건 뭔가 했더니 그렇게 해야 사는 사람이 나중에 판매세를 적게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중고차 시장의 불문율인지 문의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그 질문을 했다.
아무래도 중고차를 사려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없을 테니 단 얼마라도 돈을 아끼고 싶을 터였다. 개인이 중고차를 매매하는 경우 ‘통상’ 그렇게 한다는 친구의 언질도 있었다. 내가 살짝 눈감아주면 사는 사람이 그만큼 이익을 볼 것 아닌가 하는 배려도 약간은 생겼다.
두어 명이 차를 보고 사겠다고 했다가 취소를 하는 과정에서 한 부부가 찾아왔다. 차를 마음에 들어 했다. 가격을 깎아 줄 수 있는지를 물었고 나도 생각하고 있던 가격을 이야기 했다. 미국 온지 일주일도 안 된 유학생 부부인데 차를 사려고 세웠던 예산보다 좀 비싸지만 가격에 비해 차가 좋은 것 같다며 사고 싶다고 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면서 부부가 미국 실정을 모르는 것 같길래 내가 먼저 판매세를 적게 낼 수 있게 차 가격을 낮춰서 쓰겠다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그 부부가 이렇게 대답했다.
“저희는 신학생입니다. 세금을 적게 내고 싶은 유혹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부터 편법을 쓰기 시작하면 앞으로도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사는 금액 그대로 써 주세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그것도 본인들의 상황을 이해하는 체 먼저 제안했던 내가 민망할까봐 담담하게 예의를 갖춰 이야기하는 그 부부 앞에서 고개가 숙여졌다.
자라면서 부모님이나 선생님들로 부터 항상 정직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고 또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다. 정직하지 않아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도 없지 않지만 ‘언제나’ 정직해서 약간의 손해를 감수해야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하지만 정직한 사람들 앞에서 상대적으로 ‘부정직한’ 모습의 나를 발견하는 것이 이렇게 부끄러운 일일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부부는 돈을 지불하고 차를 가져가기 전에 차 안에 있던 네비게이션을 떼서 나에게 주었다. 내가 쓰려고 했던 것이지만 그냥 가져 가시라고 했다. 가난하지만 정직하게 살겠다는 부부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마지막 강연’으로 유명한 랜디 포쉬도 자신이 죽기 전에 해주고 싶은 가장 소중한 조언이 ‘정직하라’ (tell the truth), ‘언제나’ (all the time) 라고 했다. 역시 삶을 치열하게 살다 간 사람들의 말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돈 봉투를 받았네, 안 받았네, 잠깐 맡았다가 돌려줬네, 시치미를 떼며 정초부터 난리를 겪고 있는 한국 정치인들이 이 신학생 부부의 절반만한 정직성만 있어주면 좋겠다.
지니 조/ 마케팅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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