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코닥 모먼트’라는 말이 있다. 극적인 장면, 결혼식이나 돌잔치 같은 기념행사 장면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때마다 사람들은 카메라 셔터를 눌러 사진으로 기록해두는데 얼마 전까지 미국 카메라의 대부분이 코닥이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그 얼마 전이라는 게 벌써 40년 전 일이다. 1892년 조지 이스트먼에 의해 설립된 이스트먼 코닥사는 70년대까지 미국 카메라 시장의 85%, 필름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었다. 코닥이라는 이름은‘다른 어떤 물건과 혼동되지 않고 잘못 발음할 수 없으며 짧아야 한다’는 이스트먼의 철학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 미국에서‘카메라 하면 코닥, 코닥 하면 카메라’였지 다른 회사가 이 시장을 넘본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너무 오래 혼자만의 독주가 계속되면 나태해지고 게을러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세상의 이치다. 80년대 일본의 후지가 저가 필름으로 미국 시장에 진출했을 때 코닥 측은 코웃음을 쳤다. 미국인들이 싸구려 일본 물건을 살 리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1984년 LA 올림픽 스폰서를 맡아달라는 요청도 거부했다.
이 기회를 잡아채 올림픽 스폰서가 된 후지는 그 후 꾸준히 시장 점유율을 높여갔고 97년에는 17%까지 올라갔다. 반면 96년에서 97년 한 해 사이 코닥의 점유율은 80%에서 74%로 떨어졌고 수익은 13억달러에서 500만달러로 급감했다.
보통 회사 같으면‘이것 큰일 났다’고 생각해 무슨 대책을 내놨을 텐데도 워낙 오랫동안 강자로 군림해온 코닥은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하고 말았다. 2001년 다시 필름 판매가 줄어들었을 때도 9/11 테러의 여파로 돌렸다.
2005년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판매 1위를 기록하기도 했으나 이는 죽기 직전 반짝 회생에 불과했다. 카메라 시장의 대세는 필름에서 디지털을 지나 이미 셀폰으로 접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스마트폰에 장착된 카메라는 보통 8메가픽슬이 넘는다. 얼마 전까지 디지털 카메라 주종이었던 5메가픽슬을 능가하는 것이다. 찍은 다음 바로 이메일로 컴퓨터나 프린터로 전송할 수 있어 카메라에 담았다 다시 선으로 연결해 저장하고 뽑아야 하는 수고도 필요 없다. 극소수 사진작가를 제외하고는 카메라를 따로 사 셀폰과 함께 들고 다닐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금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가 대부분의 경우 마지막 카메라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120년 동안 사진 시장을 지배하던 코닥이 곧 파산을 신청할 전망이라 한다. 좀 더 일찍 시장의 흐름을 내다보고 방향을 바꿨더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거기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과 기업은 도태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자연의 법칙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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