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세밑에 한국에서 들려온 학교 친구들 사이의 따돌림과 폭력, 그로 인한 피해학생의 자살, 그 이후 이야기들은 새해가 되어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런 소식을 접하는 부모들의 심정은 하나 같이 복잡하다.
가슴 무너지는 안타까움과 교육 현실에 대한 분노, 얼룩진 사회의 단면을 투영한 듯한 자책 그리고 결국 우리 아이는 피해자가 아니었다는 안도감. 이런 심정을 다잡고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고. 나쁜 친구가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사례를 줄줄이 식탁의 주요 메뉴로 올린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은 시작된다.
대부분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는 바르고 밝고 그저 평범한 아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아이가 문제를 일으키면 친구를 잘못 만나 그릇된 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나쁜 친구와의 격리를 해결책으로 선택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 아이는 정말 평범한 아이인 것일까. 우리가 나쁘다고 규정한 그 친구의 부모 역시 자신의 아이는 착하고 평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 부모는 혹시 우리 아이가 나쁜 친구이고 우리 아이를 잘못 만나 자기 아이가 사고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꼼꼼히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아이가 학교에서 최근에 싸운 친구는 누구인지, 용돈이 생기면 어디에 가장 쓰고 싶어 하는지, 멋진 여자/남자친구를 사귀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워하는지, 호감가지 않는 친구가 말을 걸면 어떻게 상대하는지, 가장 친한 친구가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것을 보면 어떻게 대처하는지 부모인 우리는 알고 있는지 말이다.
우리는 아이가 나쁜 친구를 멀리하기만 바랄 뿐이지, 네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라고는 가르치지 않고 있다. 또 우리 아이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만큼, 가해자도 될 수 있다고는 결단코 생각지 않는다. 그저 우리 아이는 절대 그럴 아이가 아니다 라고만 믿을 뿐 정녕 어떤 아이인지는 잘 모른다. 결국 자신의 자녀에 대해 가장 모르는 사람은 부모, 바로 우리들인 것이다.
아이를 믿는 것은 부모가 가지는 최고의 특권이자 어쩌면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특권과 의무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녀에 대해서 알아야 하고, 아이가 바른 사람이 되도록 끊임 없이 가르쳐야 한다. 물질적 성공의 가치만큼 우정의 가치를 가르치고,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라고 가르치기 전에 먼저 좋은 친구가 되라고 가르쳐야 한다. 그랬을 때 비로소 아이를 폭력으로 부터 그것이 가해의 편이건, 피해의 편이건 구해낼 수 있을 것이다.
어렸을 적 한국에서 자라면서 종종 이런 미담 아닌 미담을 듣고는 했다. 부잣집 아이인 반장이 학교를 빠진 친구의 집을 찾아가 보니, 산동네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소녀가장으로 살고 있었고, 이후 반장은 친구를 도와주며 서로 제일 친한 친구가 되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당시 실제로 가능했고, 조건을 뛰어 넘는 우정이 존재했기 때문에 미담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이런 미담을 상상조차 못할 거라고 걱정해 본다. 우리가 더 이상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은 친구란 성공한 부모 밑에서 유복하게 자라는 아이를 의미하며, 그런 친구와 어울리는 것이 미래의 성공 조건을 갖추는 것이라는 암묵적 가르침만이 우리 아이들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 본다.
자녀에 대해 다시 탐구하고, 우리 부모들도 다시 깨우쳐야 할 때이다. 2012년에는 부모인 우리가 다시 배우고, 다시 가르쳐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뿐 아니라, 이곳 미국에서도 말이다.
문선영 / 퍼지 캘리포니아 영화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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