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년에는 프랑스, 1871년에는 미국이 무력을 앞세워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도로 쳐들어 온 병인양요와 신미양요가 발생했다. 두 전투 모두 조선군은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투지로 맞서 싸워 서양 오랑캐를 물러가게 했다. 승리에 고무된 대원군은 1871년 전국 곳곳에 “서양 오랑캐가 쳐들어오는데 싸우지 않는 것은 화해를 주장하는 것과 같고 화해를 주장하는 것은 곧 매국”이라는 내용의 척화비를 세운다.
그 후 10여년이 지나 1884년 김옥균은 나라를 개혁해 보겠다고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3일 천하로 끝나고 일본에 망명한 후 상하이로 건너갔다 1894년 암살된다. 그의 시체는 조선으로 송환돼 부관참시 되고 머리는 효수됐다 어디엔가 버려져 지금은 찾을 길이 없다.
일본은 1853년 미국이 흑선을 이끌고 와 통상을 요구하자 문호를 열고 개혁과 개방으로 힘을 길러 아시아 유일의 강국이 된다. 만약 대원군이 일본처럼 개방의 길로 나갔거나 김옥균의 개혁이 성공해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고 조선을 부강하게 만들었더라면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일도, 나라가 두 동강이 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나라를 지킨다고 쇄국정책을 편 것이 결국 일본에 나라를 바친 꼴이 됐으니 아이러니 치고도 너무 심한 아이러니다.
그 후 100년 세월이 지났지만 대원군과 김옥균의 싸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세계 최대의 경제 영토인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노무현 시절부터 추진돼 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22일 야당의 격렬한 반대 속에 가까스로 한국 국회를 통과했다. 야당과의 몸싸움을 막기 위해 여당은 기습적으로 본회의장으로 들어가 전격적으로 처리했으며 민노당의 한 의원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최루탄을 숨겨가지고 와 터뜨리는 소동이 벌어졌다. 경찰이 시위 진압을 위해 최루탄 쏘는 것은 봤지만 야당 의원이 국회 의사 진행을 방해하기 위해 최루탄을 던진 것은 처음이다. 한국 정치 수준을 보여주는 한 편의 코미디다.
어쨌든 이번 FTA 인준으로 한국은 유럽과 아세안, 미국 시장을 아우르는 세계 최대의 경제 영토를 갖게 됐다. 이렇게 넓은 지역에 걸쳐 자유 무역을 할 수 있게 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FTA를 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 시장에서 관세 부담 없이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을 뿐이지 거기서 승리하기 위한 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한국인의 두뇌와 의지에 달려 있다.
한반도 반 토막을 영토로 가진 자그마한 나라, 6.25 이후 지난 60년간 통상으로 먹고 살며 아프리카 수준의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에 육박하는 경제 대국으로 큰 한국이 앞으로 나아갈 길은 세계 시장 개척 이외에는 없다. 그리고 FTA는 그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우리는 코앞의 안전만을 생각하다 나라 전체를 내준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개방이 번영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쇄국은 몰락을 보장한다. 일류 국가로의 도약을 가능케 할 한미 FTA의 최종 관문 통과를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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