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확한 햇포도로 담근 와인인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가 17일 자정을 기해 전 세계 150여개국에서 일제히 판매가 개시됐다. 이 와인은 매년 11월 3번째 목요일 0시에 판매를 시작하는 것이 철칙이다. 만약 업소가 이 규정을 어길 경우 다음 해 보졸레 누보를 공급하지 않는 등 벌칙이 부과된다.
보졸레 누보는 말 그대로 햇와인이다. 가메이라는 포도로 만드는데 햇와인인 만큼 숙성이 빠르다. 대신 깊은 맛은 없다. 캬버네 같은 맛을 기대한다면 실망하겠지만 곧바로 마시기에는 괜찮은 와인이다.
보졸레는 프랑스 브르고뉴 지방의 가장 남쪽 지역이다. 날씨가 따듯해 포도수확이 다른 지역보다 빠르다. 이런 이점을 활용해 매해 가장 먼저 수확한 이 지역 포도를 단기 숙성시켜 내 놓기 시작한 것이 보졸레 누보다. 한동안은 프랑스에서도 일부지역에서만 마시는 와인이었지만 1980년대 들어 프랑스 정부가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면서 일약 와인계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전 세계적으로 목요일 자정을 기해 판매를 개시하도록 규정한 것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달아오르게 만드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다. 이런 전략을 통해 보졸레 누보 출시를 이벤트화 하는데 성공했다. 프랑스의 보졸레 누보 마케팅에 가장 뜨겁게 반응한 나라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국이다.
1996년 처음 한국에 소개된 보졸레 누보는 한국사회 특유의 ‘쏠림현상’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런 분위기에 휩쓸려 여러 박스를 사재기 한 사람들까지 있었다. 와인을 좀 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올해 보졸레 누보 맛 보셨느냐”는 인사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그러나 보졸레 누보는 와인의 질로 따지자면 아주 평범한 와인일 뿐이다. 가메이라는 품종 자체가 정통와인을 만들기에는 2% 정도 부족하다. 맛은 새콤달콤하고 가볍다. 그래서 정통와인 애호가들은 이 와인을 포도주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동안 지속되던 보졸레 누보 열풍은 현재 거품이 많이 빠진 상태다.
이 때문에 한동안 잠잠했던 보졸레 누보 마케팅이 올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올해 보졸레 지역의 기후조건이 봄부터 일조량이 좋았던 데다 특히 여름 강수량이 적어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며 그래서 그 어느 해 보다도 훌륭한 수준의 와인이 만들어 졌다고까지 선전하고 있다. 이것은 업자들의 주장일 뿐 판단은 어디까지나 소비자들의 몫이다.
보졸레 누보 열풍이 마케팅의 산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보졸레 누보 자체를 폄하할 이유는 없다. 햇와인은 한번쯤 음미해 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가격도 병당 10달러 내외로 부담 없고 한인 마켓들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다만 햇와인인 관계로 크리스마스 이전에 마셔버리는 것이 좋다.
간혹 2000년도 보졸레 누보처럼 품질이 뛰어나 1년까지 보관하면서 마실 수 있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거품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보졸레 누보 출시를 하나의 가벼운 이벤트로 받아들인다면 이 또한 생활을 기름지게 하는 작은 즐거움으로 만들 수 있다. 특히 다음 주로 다가온 추수감사절을 맞아 주위 사람들과 보졸레 누보 한잔을 나누며 수확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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